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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朝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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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정치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소군원(昭君怨)'의 한 구절. 중국 당(唐)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을 노래한 것이다. 서시.초선.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은 한(漢) 원제 때 흉노(匈奴)에 조공녀로 끌려간 궁녀다.

조공(朝貢)은 서주(西周) 때 제후가 천자에게 바친 군신의 예다. 이것이 고대 중국과 주변국의 외교관계로 확대됐다. 주변국은 조공을 바치고, 중국은 왕 책봉과 사여품(賜與品)을 내린다. 주변국을 중국의 패권에 집어넣는 수단이다.

그러나 군신관계가 역전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漢)과 송(宋)이 형이 되는 형제의 맹을 맺었지만 흉노는 한을 '아우의 나라', 요(遼)왕은 송 황제를 조카로 불렀고, 금(金) 황제는 남송(南宋)을 제후국으로 봉하기도 했다.

한 고조 유방은 항우를 격파한 다음해 흉노를 공격하다 백등산에 일주일이나 갇혔다 살아나 굴욕적 화친을 맺었다. 한의 황제가 바뀔 때마다 맏공주를 선우(흉노의 왕)의 첩으로 보내야 했다. 거둔 세금의 10% 이상도 흉노의 몫이었다. 그래도 한은 "전쟁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고 믿었다. 흉노도 대륙을 지배하기엔 군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무자비한 약탈로 겁을 주며 막대한 세폐(歲幣)를 갈취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흉노의 요구는 계속 커졌다. 지천으로 쌓인 비단은 서역에 내다 팔았다. 로마까지 흘러갔다. 비단길(silk road)이다.

송(宋)은 비단길에 바닷길까지 열려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했다. 국고가 넘쳐났다. 그럴수록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컸다. 북방 오랑캐였던 요와 서하(西夏), 나중에는 금과 몽골에 엄청난 세폐를 바쳤다. 갈수록 늘어나는 공물과 군비 지출로 국가 재정이 흔들리게 됐다. 남쪽으로 쫓기면서도 악비 등 항전(抗戰)파를 숙청하며 화친을 구걸했다. 결국 원(元)에 대륙을 모두 넘겨줬다.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의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12일 "북의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 남한을 보호한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그러면서 당당히 쌀 50만t과 신발.비누 등 경공업 원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조공을 요구하는 투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사시키면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이 정부의 정성에 대한 응답치고는 너무 무례하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