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든 보수든 기대 기꺼이 배반 … 공허한 정의 선언 안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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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안 대법관은 11일 취임사에서 "저를 추천한 이른바 보수단체나 진보단체의 편파적 신뢰나 일방적 기대를 망설임 없이 털어버리고 기꺼이 배반하겠다"고 말했다. 전 대법관은 이날 이홍훈.박일환.김능환.안대희 신임 대법관과 함께 취임식을 하고 6년간의 임기에 들어갔다.

전 대법관은 "고독한 성(城)에 머무르거나 공허한 정의를 선언하는 대법관이 되지 않겠다"며 "오직 국민이 갈구하는 정의 발견과 선언에만 전념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법원 밖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까지도 두려움 없이 두루 경청해 높은 담을 넘어 들어오는 큰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일은 없도록 경계하겠다"고 했다.

대법관 발탁과 관련, "기대할 때는 오지 않던 기회가 여러 번 스쳐 지나가기에 그냥 무심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문득 저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로 시작되는 문정희 시인의 시 '먼 길'을 낭송하기도 했다.

전 대법관은 그동안 ▶사법부의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인 사과▶국가보안법 개정 등을 주장하며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판사로 분류돼 왔다. 대법관 추천 과정에서 참여연대와 법원공무원노조 등이 적극 밀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지난해 10월 참여연대의 '사법감시'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에) 많은 판사가 의아해하거나 일반 국민이 분노하는 판결이 있었다"며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를 촉구했다. 이날 취임사에서도 "(현재 법원에선)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보다 고치고 바꾸어서 더 나아질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소수자 대변'과 관련, 전 대법관은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서울 강남의 집 때문에 빈한한 법관이 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 서초동의 77평짜리 아파트 등 23억원 상당의 재산(남편 재산 포함)을 소유하고 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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