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역동적인 지식이 힘' 대학서도 글쓰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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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근의 대학 교육은 '글쓰기 열풍'이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대학 교양 과정에 논술(논문 쓰기, 논리적 글쓰기, 논술, 에세이 연습 등의 이름으로)은 이미 필수로 자리 잡았으며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투자되고 있기까지 하다. 영어 열풍은 이에 비하면 사소해진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내가 가르치는 한 대학에서 논술 과목은 가장 서둘러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인기 있는 과목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하기 때문에 분초를 다퉈야만 수강신청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논술, 글쓰기 관련 서적의 소비층은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에만 한정되지 않고 보고서나 기획서를 써내야 하는 회사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니 이런 열풍의 원인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논술은 취업과 승진의 핵심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열풍을 이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회 조건의 변화이다. 민주화와 정보화의 진전은 한편으로 사람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증폭시켰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 속에서 지식과 정보의 위상을 변화시켰다. 서울대 박성창 교수(국문학)는 이 변화를 "이전에는 제공되는 정보를 잘 듣고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잘 말하고 쓰는 능력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구라고 요약한다.

사회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 정보를 많이 암기하여 꺼내 쓰는 정태적 지식인이 아니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바뀌고 세상에 필요한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된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스스로도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역동적 지식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과거에 배웠던 것만 믿고 안주했다가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퇴출을 강요당한다. 뒤에 흘러오는 물이 앞의 물을 밀어내는 것은 만고의 이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문제 상황인 것이다.

결론만 말하면, 이 때 필요한 것이 '논술' 능력이다. 논술 능력은 물론 단순하지 않다. 이해력과 독해력, 사고력, 상상력과 창의력, 종합력, 표현력 등의 종합적 능력이 논술 능력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4학년 졸업반 내내 철학을 공부하고, 이를 중심으로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대학에서도 논술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논술은 가장 고전적인 능력이지만 또한 가장 현대적인 능력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을 요구하고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르네상스의 지식인은 실제로 모든 분야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반면 오늘날 요청되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은 언제든 원하면 찾을 수 있는 정보와 수단이 기본적으로 구비된 상태에서 그것을 엮어 갱신해 내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능력을 배양하고 확인하는 수단이 논술이다. 이로써 현재의 논술 열풍은 더 폭넓게 확산되리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입시 논술의 중요성은 이런 시대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옳다.

김재인 유웨이 중앙교육 오케이로직 논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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