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카우보이 외교' 끝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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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카우보이 외교'가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17일자)에서 보도했다. 카우보이 외교란 서부의 총잡이처럼 힘을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외교 방식을 뜻한다.

타임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반응에서 이 같은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잡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보다 부시의 반응이 더 놀랍다"며 "그는 이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외교(diplomacy)'라는 단어를 여섯 번이나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4년 전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며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은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엔 "(북한에) 단일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우방.동맹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타임은 이런 변화가 단순한 용어 조절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방통행식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른바 '부시 독트린'에 근본적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집권 초기엔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외교는 '겸손한'방식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클린턴 정부 시절의 외교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의 힘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고 '불량 국가'에 민주주의를 퍼뜨리겠다고 나섰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타임은 "이 같은 방식은 부시의 개인적 스타일과도 잘 맞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부시 독트린은 말이 아니라 행동의 의해 규정돼 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알카에다 문제에 끌려다니는 동안 지구촌의 다른 문제들은 미국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 이란 핵 문제와 아프리카 수단의 집단학살, 중국의 패권주의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이라크에서도 일은 점점 꼬여만 갔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올해 5월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좌절과 실수가 있었다"고 시인해야만 했다.

타임은 "부시 정권의 전략적 변화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득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전했다. 라이스의 실용주의 외교정책이 딕 체니 부통령 같은 '매파'들을 주변부로 몰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란 문제를 풀기 위해선 미국이 다자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다.

잡지는 "부시 독트린이 그간 가져왔던 가장 큰 환상은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 없이도 미국이 중동을 재편해 우호적 정권을 들어서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짜 '외교'란 그 단어를 되풀이해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타임은 이어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많은 부분이 부시 대통령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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