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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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 후반 5분 프랑스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뒤 지네딘 지단이 자신의 유니폼을 잡아당긴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가다가 갑자기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마테라치는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고 지단은 생애 14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레드카드를 받았다. 절정으로 치닫던 월드컵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었다.

경기 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은 지단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에 몰렸다. 무엇이 월드컵 결승전이자 자신의 은퇴경기를 망칠 정도로 흥분하게 만든 것일까. 프란츠 베켄바워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은 “지단은 정말로 조심스럽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라며 “마테라치가 틀림없이 지단의 성질을 건드리는 말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해석도 다르지 않다.

연장 후반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지네딘 지단이 우승팀에 주어지는 월드컵 트로피 옆을 쓸쓸히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AP=연합뉴스]

마테라치는 지단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당사자인 지단과 마테라치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다. 영국의 ‘더 아이리시 타임스’는 “인종차별적인 말들이 오갔을 정황이 있다. 이것이 알제리계 이민인 지단을 자극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지단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날카로운 성질과 폭행으로 몇 차례 퇴장당한 경력이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지단은 후반 26분 사우디 선수의 가슴을 발로 밟아 퇴장당했다. 당시 사우디 선수는 지단에게 “이 북아프리카 출신의 야만인아”라고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가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인 이민자 2세 지단은 평소 인종문제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탈리아 유벤투스 시절인 2000~01시즌에는 독일 함부르크 SV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요헨 자이츠를 머리로 들이받고 퇴장당해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조합해 보면 마테라치는 이날 지단을 자극하기 위해 ‘인종차별적인 한마디’를 준비했고, 여기에 지단이 걸려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의 스포츠전문지 레퀴프의 크리스토프 라르셰 기자는 지단이 “내 행동에 대해서는 후회하지만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 ‘그럴 뜻이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해 마테라치를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두 번째 논쟁거리는 퇴장 조치가 정당한 절차였는가다. 로이터 통신은 “대기심이 경기장에 설치된 전광판 화면을 보고 알려준 내용을 주심이 퇴장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은 “주심은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고 비디오 장치가 새로운 규칙이 됐다”고 비판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왜 그가 처벌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준 지단에게 존경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마르첼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 역시 “지단이 그럴 선수가 아닌데 그런 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게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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