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 '역시 넘버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페넌트 레이스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그는 광주구장 3루쪽 더그아웃 뒤편의 라커룸에 있었다. 선수단.코칭스태프가 얼싸안고 우승을 자축하고 있던 그 순간에 그는 한데 뒤엉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

그의 오른쪽 어깨와 오른쪽 허벅지는 두툼한 얼음덩어리로 감싸져 있었다. 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현대 김재박 감독에게 다가가 축하인사를 건넸다.

"감독님 고맙습니다. ""그래, 정말 수고 했다." 둘은 곧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침묵이 흘렀다. 뜨거운 무언가가 그들의 가슴 속에 오고 갔으리라.

현대의 에이스 정민태(33).

그는 지난달 29일 광주 기아전에서 8이닝 5안타.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제압하고 팀에 우승을 안겼다. 최후의 1승을 남겨놓고 마운드를 책임진 정민태는 분명 현대의 '수호신'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유니폼과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흔적이 역력했다.

17승2패(방어율 3.31)의 시즌 성적이 말해주듯 그는 올시즌 프로야구 마운드의 최강자였다. 정민태는 일본 진출 직전이던 2000년 공동 최다승(18승)을 수상한 이후 3년 만에 최다승 1위와 승률 1위(0.895)에 오르며 위용을 과시했다.

개막전 선발승과 시즌 최종전 선발승이 대변해주듯 그는 현대 마운드의 처음과 끝을 책임졌다. 고질적인 오른쪽 허벅지 근육통에 시달리면서도 팀 투수진을 훌륭히 이끌어 최고 투수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지난 2년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겪었던 설움도 깨끗이 씻어버리는 그런 활약이었다.

시즌 도중 세계 최고 기록인 한 시즌 선발 21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던 그는 9월 6일 삼성과의 수원 경기에서 연승 행진이 깨지고, 곧바로 9월 11일 LG전에서 또 패전투수가 되면서 2연패의 부진에 빠지기도 했으나 오뚝이처럼 일어나 팀 우승을 견인했다.

든든한 에이스 정민태가 있기에 1998년.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세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현대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광주=이태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