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장관들 잇따라 "파병 불가피"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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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정부 내의 이라크 추가 파병 불가피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일각의 반대론은 쑥 들어가고 마치 전투병의 규모만 남은 관건인 듯한 분위기다. 파병 불가피를 시사하는 핵심 각료들의 언급은 30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국무회의 직전 기자들과 만난 각료들은 "(파병 결정 시기가) 너무 늦춰져선 곤란하다"(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경제만을 고려하면 파병을 해야 한다는 개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金振杓 경제부총리)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날 "한국은 세계 평화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받았던 많은 도움에 대해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게 이런 분위기를 더 촉발시킨 듯했다.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이라크 내 본격적인 전투는 이미 끝났으므로 큰 전투를 치를 부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파병을 전제로 검토가 이뤄지는 듯한 뉘앙스였다.

정부의 파병 불가피론 확산은 세가지 요인에서 나오고 있다. 안보 우선론이 제기된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날 때 미군이 자동적으로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며 "만일 그럴 때 미국이 여론조사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주한미군이 보유한 무기 총액이 우리나라 1년 예산과 맞먹는다"며 "패트리엇 미사일 하나 사기 쉽지 않은 마당에 그걸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현실론을 폈다.

경제적 측면도 주요한 기준이다. 재건 참여 등 이라크에서의 이득 쪽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위기 예방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은 "독일.프랑스도 미국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경제 측면에선 미국의 영향을 바로 그날 받는 민감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혹 미국과의 관계가 삐끗해져 신용평가라도 하락하면 미국 기관 투자가들의 경우 자동적으로 돈을 빼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민심도 결국은 '실용 우선'을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정부 내 낙관론도 한 요인이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은 "여론조사를 잘 읽어보라"며 "파병에는 반대 여론이 많지만, 유엔 승인 아래라면 찬성이 많고, 결국은 파병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게 여론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파병 반대론자로 알려진 유인태 정무수석 등은 최근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고 함구하고 있다.

[디지털국회] 이라크 파병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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