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플러스] 재계 입장 말하라 해놓고 고개 돌리는 공정거래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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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8월 25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재계가 출자총액규제 때문에 투자가 안 된다고 했는데 투자가 안 된 사례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계가 근거없는 주장을 하며 떼를 쓰고 있다는 인상을 줄 만한 말이다.

그러나 최근 재정경제부의 국정감사 자료에는 지난 7월 30일 열린 시장개혁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이미 재계가 산업자원부를 통해 출자규제로 투자가 저해된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돼 있다.

지난 3월 정부가 부산 신선대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을 매각할 때 동부건설이 출자한도 때문에 입찰을 포기했고, 구조조정 관련 출자에 대한 예외규정이 없어지는 바람에 두산의 사업구조 개편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제시된 사례들은 투자가 아니라 지분 획득과 관련된 것"이라며 "출자 규제가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는 아직 못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부담이 된다고 밝힌 사례가 있는데도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그런 사례가 없다고 하면 앞으로 재계가 공정위에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지난달 2일 姜위원장과 경제5단체장의 간담회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연장에 대해 "지갑 열어 보겠다는 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姜위원장은 "재계가 공정위 입장을 이해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다. 재계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공정위가 정작 스스로에게는 다른 잣대를 대는 게 아니냐고 불만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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