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좌 시도 악이다|이상우<서강대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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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능은 악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 더 큰 악이 출현할 길을 열어 줄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라는 안일 무사한 생각을 책임 맡은 사람이 가져서는 큰일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두 가지 요소로 이념과 조직을 꼽는다. 이념이란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가겠는가 하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모은 것이다. 바른 이념을 제시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얻게 되면 다스리는 일은 쉬워진다. 스스로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이란 일을 하기 위하여 사람을 엮어 놓은 것이다. 이 조직은 다스리는 사람의 뜻을 펴는 도구라 해도 된다.

<왜 우리는 불안한가>
따라서 조직이 제대로 짜여지지 않거나 다스리는 자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영이 서지 않게 된다. 대체로 나라의 혼란은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발적 승복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이념의 혼란이나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조직의 해이에서 일어나게 된다.
통치자는 시대에 앞서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에게 앞으로 도달하게 될 나라의 모습을 제시하고, 이를 이해하고 따르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도 받는 사람보다 생각이 뒤에 처지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면 나라는 혼란을 맞게 된다. 누구도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제대로 행사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행동의 기준을 잃게 된다. 무엇이 해도 좋은 일인지, 무엇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를 가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무법 천지가 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두 사람만 모이면 서로의 인사가 『어떻게 되어 가는 겁니까』로 보편화될 정도로 불안의 조짐이 높아져 가고 있다. 모두가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해하고 있다. 근로자도 소시민도 기업주도 모두 마찬가지다. 심지어 나라를 이끌고 나갈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지도급 인사들도 똑같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 불안은 이념의 혼란과 공권력의 붕괴, 두 가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투쟁이 격화되어 가고 있다. 논쟁의 단계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타도하겠다는 투쟁으로 번져 가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좌우투쟁이 극심해져 가고 있다.
모든 사람의 기본인권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민주참여의 기회를 주는 자유민주주의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을 나라의 국시로 삼고 출발한 대한민국인데 계급독재를 앞세우는 레닌주의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으로부터 공공연한 도전을 받아 온 국민이 아래위가 모두 생각의 혼란을 겪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가 앞장서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무시해 왔는가 하면 이 나라 지식인들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이를 온 국민의 신념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등한히 해와 자유민주주의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 세대가 자라 왔기 때문인데 이제 누구를 탓하겠는가.

<혁명적 치유책 시 급>
조직의 생명은 일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제자리에 앉히는 일과, 일을 맡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 않게 만드는 일등 두 가지에 달려 있는데 능력과 관계없이 자기와 친한 사람 아는 사람을 엉뚱한 자리에 앉히는 공직의 사유화, 그리고 근조직보다 사조직을 앞세우는 일이 벌어지고, 할 일 안 해도 보아주고, 법을 어겨 가며 억지를 해도 그만인 정도로 기강이 해이해지니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없었다.
더구나 공권력의 생명은 공권력을 가질 사람이 가졌다고 믿는 정통성과권력이 법대로 행해진다고 믿는 정당성에서 생기는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의심받는 세월이 오래되어 공권력의 권위가 설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불안은 지나간 잘못을 고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앞날을 바로 잡아야 가신다. 혼란과 불안으로부터 온 국민을 해방시키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우선 이념을 바로잡고 내일을 제시해 주는 일과 나라의 조직을 바로잡고 질서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념이 투철하지 못한 정치지도자는 물러가게 하고 국민을 어디로 끌고 갈지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들은 도태 시켜야 한다. 아랫사람이 쳐다보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윗자리에 가는 인사를 통하여 권력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능력이 아래위가 엇바뀔 때 조직은 문란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법 같지 않은 법은 뜯어고치고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엄격하게 시행하여야 한다. 그것이 질서회복의 첫걸음이다.

<아직도 시간은 있다>
무조건 강권을 휘두르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힌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세월이 흐르면 사정이 달라지고 사정이 달라지면 이념도 법도 고쳐야 한다.
국민의 감각보다 한발 앞서서 정치인들이 법과 제도를 고쳐 나가면 그 나라는 무리 없이 진화해 나가지만 한발 늦게 되면 혁명을 겪게 된다. 혁명은 모두 통치자의 우 둔과 무능이 만들어 낸 비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30여 년을 집권해 오던 일본자민당이 국민의 변화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가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폭발직전의 문제가 이곳저곳 쌓여 있다.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만들어 주려면 어설픈 신 택지 개발정도로 되겠는가. 농지개혁에 준 하는 택지개혁정도의 혁명적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지칠 대로 지친 교사들의 교육정책개선요구를 실정법만 앞세워 해결하려 해서 문제가 풀리겠는가.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해 현장의 요구이상을 정부가 앞질러 고쳐 나가야 해결된다.
나라는 다스리는 자의 것만은 아니다. 온 백성의 것이다. 강 건너 불 보듯 걱정 만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이 나라 선비들은 앞장서서 이념정비에 힘을 쏟아야 하고 국민들도 앞으로 있을 선거를 통하여 바른 통치자를 고를 수 있도록 나라일 을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
국민들은 높은 수준의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 이념도 안목도 신념도 없는 정치인들에게 역겨움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일본국민들처럼 정권 타령만 하고 있는 기성정치인들을 과감히 도태시켜야 한다. 폴란드 국민들처럼 무능한 정당에 패배를 안겨 주어야 한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아직은 혁명이라는 파선까지는 가기 전에 배를 바로잡을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가지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모두 나서 주기를 당부한다. 무능과 좌 시도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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