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뜩이는 감성 新作의 성찬 무대 '2003 창작 합창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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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합창은 관현악과 달리 창작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래를 하자면 가사가 필수적이고 한국인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것은 우리말 가사이기 때문이다. 좋은 우리 시에 곡을 붙여 부르기 위해선 작곡가들의 손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대구시립합창단(지휘 이상길) 등 전국 14개 전문 합창단이 참가해 신작 30곡을 초연한 제2회 대한민국 창작합창축제(예술감독 이판준.25~27일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마치 경연대회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 치러진 합창 한마당 잔치였다.

한국 레퍼토리의 구축을 위해 각 합창단의 지휘자들이 주축이 돼 공모와 위촉에 나섰고, 이를 한 자리에 선보인 것이다. 연주자들이 앞장서 판을 벌인 후 작곡가들을 초청했고, 앞으로 자체 공연에서 레퍼토리로 연주할 작품을 직접 골랐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초연작 중 대다수가 전래 민요나 동요를 편곡한 것이었다. 신동민의 '윷놀이', 진규영의 '이어도사나', 함태균의 '여우야 여우야', 정덕기의 '꼬부랑', 이희주의 '자장가', 전성희의 '뱃노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시에서도 굿거리 장단 등 전통음악의 리듬에 토속적인 가락을 얹어 부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백소영의 '공무도하가'는 임을 떠나보내는 애틋한 심정을 노래한 가사인 데도 신나는 국악 장단이 등장해 음악과 가사가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굳이 '우리 것'을 고집하지 않은 허방자의 '하얀눈 맞으며 오겠지', 심옥식의 '바람론' 등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전곡을 아카펠라(무반주)로 부른 대구시립합창단과 코믹 연기를 곁들여 코끝이 찡한 감동을 안겨준 안산시립합창단(지휘 박신화)은 창작곡에서도 특유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호흡으로 수준 높은 감동을 자아냈다.

대구=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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