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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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의 일이 어제같게만 느껴지고 어제 일어난 일이 10년전 일처럼 까마득히 느껴진다. 사태의 알맹이는 날아가 버린 채 빈껍데기만 남아 뒹구는 역사의 형해화 현상이 필자에게만 적용되는 기억상실증인가. 1년도 채 안된 서울올림픽의 기억이 역사의 뒷골목으로 사라진지 오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교조파동 또한 이미 2년 전에 시작된 전교협의 후신인지도 잊고있다.
뿐만 아니다. 정말 뜻밖에도 전교조교사들의 주의·주장이 무엇인지, 왜 그들이 정부의 무차별 징계대상이 되었는지, 또 그 결말이 어떠해야될지를 모두가 모른 채 징계와 투쟁만을 지켜보고 있다. 편의상 전교조 사태를 4단계로 나누어 되짚어볼 필요가 그래서 생겨난다.
87년 9월 「열악한 교육환경과 교원지위개선을 위하여 현행 교육관계법 개정운동을 벌이자는 데 전교협이 목표를 세우며 결성되었다.
관료적 지배형태의 학교운영방식,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 늘어만 가는 잡무, 낡아빠진 책걸상, 한겨울 추위에도 불을 지피지 못하는 난로, 반공일변도와 정권유지 미화를 위해 꾸며진 교과내용….
문제제기가 교육적이었고 해결방식이 법개정운동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전교협은 중시했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까지 전교협 교사들은 자신들의 뜻과 목표를 알리기 위해 국회를 찾았고 정당을 방문하면서 자신들의 개혁의지를 열심히 설명했고 각종 토론회를 거쳐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는 민주사회의 교사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들의 요구는 비단 전체교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교육을 걱정하는 모두의 가슴에 와 닿는 교사들의 자기반성과 변신의 몸짓이었다.
그러나 문교당국의 어느 누구도, 기존 교육단체의 어느 누구도 이 목소리, 이 몸짓에 귀기울이고 마주앉아 대화하려들지 않았다.
불만에 찬 의식화 교사들의 혓소리로 홀려들었을 뿐이다. 제1막은 이런 모양으로 끝났다.
제2막. 89년5월28일 한국교육사에 어떤 형태로든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전교조의 결성식이 있었던 일요일, 예고된 결성식은 기습적으로 전투를 방불하듯 치러졌다 .「현재의 사회모순과 교육모순을 낳고있는 반민족적·반민주적 독재정권과의 투쟁에 떨쳐나선 노동자·농민·도시빈민·학생·양심적 지식인 등 모든 민족·민주세력과 굳게 연대하여 교육민주화·사회민주화, 그리고 통일에의 그날까지 줄기찬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다. 참교육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만세!」라는 선언문이 뿌려졌다.
가담교사 전원파면이라는 당국의 강경책에 아랑곳없이 지부·지회·분회 결성식이 전국적으로 강행되었다. 「징계」와 「강항」 의 힘져루기만으로 시작된 2막의 짧은 기간에 학교분회 4백46개가 결성되고 2명의 위원장이 구속되면서 1백여명의 교사가 구속과 징계에 붙여졌다. 징계와 강행의 대결구도 속에서 학부형이 나서고 중·고생들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싸움질하는 학교에 가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학부형이 나서 교문을 닫는가하면, 우리 선생님 돌려달라고 외치는 중·고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노조결성 강행만이 참 교육을 실천하는 양 노조교사들은 강행만을 내세웠고 징계만이 교육을 회복하는 양 정부는 징계만으로 대처했다.
제3막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서경원 의원 사건과 함께 출발한다. 2막의 주역이 전교조였다면 3막은 문교당국이 주도하는 역공세의 한마당이었다. 한쪽 손에는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연간 3천7백억원의 환경개선 투자비용과 교사처우개선을 위한 1천억원의 특별지원금이라는 실천방안이 제시되고 다른 쪽 손에는 교조 탈퇴하면 무조건 백지화시켜준다는 탈퇴유도작전이 쥐어져있었다.
노사분규에 넌더리를 내는 여론에 편승하면서 서의원 밀입북사건으로 냉각된 공안분위기를 타면서 전교조 공동화작전이 펼쳐진 것이다. 수세에 몰린 전교조는 단식과 농성으로 맞섰다. 이러한 대치국면 속에서 6천여명이 노조를 탈퇴했고 파면 해임된 교사가 1백30여명, 징계에 회부된 교사가 1천여명, 직위해제 직전에 놓여있는 교사가 4천6백여명으로 집계되었으며 2만5천여 중·고생이 가두로 쏟아져 나오는 교육황폐화의 조짐이 시작되었다.
8월5일한 징계완료를 독려하는 정부방침이 하달되고 7월25일한 노조실체를 인정한다면 일체의 단식과 농성을 중단하고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전교조측의 대화제의가 처음으로 나왔다. 위기를 넘긴 것이 아니라 유보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방학에 들어가면서 3막은 끝났다.
이번 주부터 가동될 범국민 중재위가 결성되고 문공위가 소집되며 각당 정책위의장이 자리를 같이해 전교조 사태를 논의하겠다고 이제서야 나섰다.
4막의 새장이 새롭게 펼쳐질 이 국면에서 무엇을 어떻게 중재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정부와 전교조는 이 4막의 마무리 출연에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인가.
장황하게나마 늘어놓은 전교조파동의 어제와 오늘 속에서 다음 세가지 요소를 긍정적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첫째, 「전교협」이 제시한 교육개혁노선과 그 실천을 위한 법개정운동은 매우 교육적이었고 합법적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반응과 유효성을 지금껏 확보하고 있다.
둘째, 전교조결성이후의 대결구도, 힘 겨루기는 교육개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육현장을 위기국면으로 몰고 가는 역기능밖에 없엇다. 셋째, 그 대결구도 속에서 그나마 얻어낸 성과라면 교육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한 정부의 방안이 구체화되었고 전교조쪽이 대화의 손짓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 세가지 긍정적 측면이 강화되고 촉구될 때는 4막의 국면이 해피엔딩의 극적 전환을 할 것이지만, 지금껏 검토된 부정적 측면이 또다시 재연될 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비극을 몰고 올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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