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훈의 축구.공.감] 정정용호, 16강행 선결과제는 '생각 속도 올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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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전 후반 득점 찬스를 놓친 뒤 아쉬워하는 공격수 조영욱. [연합뉴스]

포르투갈전 후반 득점 찬스를 놓친 뒤 아쉬워하는 공격수 조영욱. [연합뉴스]

“세밀함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후반 들어 포르투갈의 압박이 느슨해지면서 볼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후반에 보여준 모습들이 우리가 당초 의도했던 콘셉트라고 보면 됩니다.”

포르투갈전 전반 실점...0-1 분패 #강한 압박에 패스-돌파 판단 늦어 #29일 남아공전 반드시 이겨야 16강

정정용(50)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이 첫 경기 패배 후 담담하게 풀어낸 소감이다. 한국은 26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에서 끝난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본선 F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포르투갈에 0-1로 졌다.

‘AGAIN 1983(1983년 4강 신화 재현)’이라는 목표도, 포르투갈전 연속 무승(U-20대표팀간 3무6패)을 끊어낸다는 각오도 첫 경기 패배와 함께 힘을 잃었다. 이제 첫 경기를 치렀을 뿐이고 여전히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냉정히 말해 지금부턴 ‘4강’보단 ‘1승’이 더 와닿는 과제다.

포르투갈은 아르헨티나, 프랑스와 더불어 이 대회 3대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강팀다웠다. 전반 7분 결승골 장면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왼쪽 측면 공격수 조타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찔러준 볼을 오른쪽 날개 공격수 트린캉이 받은 뒤 골키퍼 이광연(강원)과 맞선 상황에서 왼발로 가볍게 밀어넣어 우리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11분 슈팅을 시도하는 이강인. 포르투갈전 한국의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다. [연합뉴스]

후반 11분 슈팅을 시도하는 이강인. 포르투갈전 한국의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다. [연합뉴스]

정정용호가 ‘말벌 축구’를 표방하며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들이 포르투갈의 득점 과정에 모두 담겨 있었다. ①강한 압박으로 볼을 따내고 ②전방으로 정확히 찔러주고 ③한 발 앞서 쇄도하며 수비진을 무너뜨린 뒤 ④골키퍼와 맞선 상황에서 침착한 마무리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정 감독이 언급한 ‘세밀함의 차이’는 ‘속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포르투갈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끈 조타-레앙-트린캉 트리오는 모든 게 빨랐다. 육체적인 스피드도 돋보였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생각의 속도가 뛰어났다. 볼을 잡으면 어느 방향으로 보내야 하는지 신속하게 판단했다. 그 볼을 받아야 할 선수는 매번 우리 수비수보다 반 박자 먼저 공간을 파고 들었다.

전반에 엇비슷한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전반 19분 레앙이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볼을 트린캉이 슈팅해 골망을 흔든 장면(오프사이드 판정), 2분 뒤 조타가 찔러준 볼을 레앙이 왼발 슈팅한 장면(이광연 선방) 등은 실점 장면의 데칼코마니였다.

포르투갈전에 앞서 둥글게 모여 결의를 다지는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포르투갈전에 앞서 둥글게 모여 결의를 다지는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상대적으로 우리 선수들은 판단에서 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반 박자 느렸다. 전방에서부터 볼을 가진 선수를 신속히 에워싸는 포르투갈의 강한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원과 수비진은 밀려드는 프레싱을 감당하지 못해 멀리 걷어내는데 급급했다. 공격수들은 볼이 어디로 어떻게 전달될 지 모르니 과감히 공간을 파고들기 어려웠다.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리지 못했다.

공격 에이스 이강인(발렌시아)이 전반에 개인기에 의한 돌파에 집착하며 여러 차례 볼을 끄는 모습을 보인 것 또한 공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후 이강인은 “실점 이후엔 일단 버티는 게 중요했다”면서 “포르투갈은 우승 후보답게 좋은 팀이었다”고 했다.

후반 들어 포르투갈의 압박이 느슨해지면서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이 살아났지만, ‘말벌 축구’를 완성할 강력한 ‘독침’이 보이지 않았다. 교체 투입된 엄원상(광주)의 빠른 발과 1m93cm 장신 공격수 오세훈의 높이는 주목할만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정정용 감독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폴란드와 U-20 월드컵 첫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는 교민들. [연합뉴스]

폴란드와 U-20 월드컵 첫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는 교민들. [연합뉴스]

우리 선수들에겐 오는 29일 오전 3시30분 폴란드 티히에서 열리는 남아공과 조별리그 2차전의 무게감이 더 커졌다. 16강에 오르려면 남아공전에서 반드시 승점 3점을 가져와야 한다.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만날 아르헨티나는 포르투갈 못지 않은 강팀이다.

피지컬이 뛰어난 대신 압박 전술에 능통하지 않은 남아공과의 경기는 포르투갈전 후반과 엇비슷한 분위기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독침 한 방으로 남아공을 쓰러뜨리기 위한 선결 과제는 ‘반 박자 빠른 생각 속도’다.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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