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자퇴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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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뿐만 아니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도 의대.한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 과학기술영재 두뇌 양성기관인 KAIST생들까지 이공계 대신 의대 쪽으로 선회하고 있어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9일 KAIST에 따르면 올 1학기 동안 78명(석.박사과정 포함)의 학생들이 자퇴했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석.박사 과정을 포함, 78명이 자퇴한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올해 1학기 동안 학부생 가운데 자퇴한 학생은 17명으로 지난 한 해(13명)보다 4명 증가했다.

지난해 이 학교에 진학한 뒤 몇달 만에 학교를 그만 두고 다시 입시준비 끝에 올해 J의대에 입학한 孫모(21)씨는 "의대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데다, 이공계 쪽의 졸업 후 전망이 밝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재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학 한달 만에 휴학계를 내고 입학시험을 다시 치러 E의대에 진학한 李모(21)씨는 "선배 등으로부터 '공대 출신은 졸업해도 정당한 대우를 받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4년 동안 이공계 관련 학과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일찍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과기원 학적팀 이종구 행정원은 "자퇴 학생 대부분이 의대.한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2학기에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준비할 것으로 보여 학부생 자퇴자는 지난해의 두 배에 이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AIST 김종환(전자전산학과)교수는 "이공계를 살리려면 처우 개선과 신분 보장이 필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충남대 송용호(건축공학과)교수는 "이공계 출신도 고위 공직자나 일반 기업 경영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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