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완충 그룹 나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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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혁명은 투쟁을 그 방법으로 삼지만 개혁은 대화와 토론을 통한 점진적 개선을 원칙으로 한다. 전교조 결성에서 합법화 투쟁에 이르는 달포 동안 정부는 전교조의 과격 투쟁만을 징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전교조측은 참교육 실천을 위한 교육 개혁 의지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양쪽의 시각과 주장은 일단 접어두고 지금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교육 현장의 황폐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5백30여개 학교의 교사들이 단식 수업 농성에 들어간지 사흘째가 되고, 이에 동조하는 몇몇 학교 고교생들이 가두 시위와 농성을 벌였으며 그중 대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은 교장실로 쳐들어가 조기 방학 철회와 징계 교사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학교 유리창을 깨는 난동까지 부렸다.
이미 조기 방학에 들어간 학교가 13개교, 이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의 거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돌아가면서 단식 끝에 실신하는 교사가 늘어가고 있다. 8월5일 시한부로 탈퇴하지 않는 교사 전원 파면이라는 정부의 강경 대처 앞에 탈퇴 교사가 2천여명으로 늘어났고 「미발령 교사협」의 예비 교사들마저 「해임교사 자리 채우기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교조 파동이 몰고 온 일파만파의 격랑 속에서 우리의 중등 교육 현장은 하루가 다르게 황폐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 누구나 우려했고 두려워했던 교육 황폐의 실상이 전교조의 주의·주장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실상을 가리켜 교육 개혁이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동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우리는 누누이 교육 개혁의 길을 대화와 토론, 국회를 통한 합법적 절차에 따른 국민적 합의 도출에 있음을 역설해왔고 문교 당국의 대화 채널을 통한 개혁 의지의 수렴,자제와 이성을 잃지 않는 전교조의 활동 방향을 거듭 촉구해 왔었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징계와 극한 투쟁으로 가열화되고 있는 이 교육 위기를 현명하게 넘기는 길이란 아직도 그 길 밖에 엾다. 더 이상의 교육 황폐와 위기 국면을 피하는 방법의 선택은 무조건 휴전하는 길 밖에 없다. 어느 한쏙의 일방적 항복을 얻어 내려할 때 치러야할 대가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전교조의 방향 설정이 다시금 확인되어야 한다. 정치 투쟁이 아닌 교육 개혁 의지가 자신들의 본래 목적이라면 교육 현장을 이렇듯 망가뜨리는 과격 투쟁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고 자기 성찰을 행동으로 보이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목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혁명이 아닌 개혁임을 행동의 자제로 실증해야 한다.
병행해서 문교 당국의 8월5일 시한부의 탈퇴 강요 마지노선도 수정되어야 한다. 탈퇴 유도, 잔류파의 공동화 작전은 잔류 교사들의 과격화를 부채질할 뿐이며 그 결과가 어떤 엄청난 일로 번질지 예상하기 조차 두렵기만 하다. 그러할 때 8월5일이라는 탈퇴 마감날짜는 정부에 자승자박의 올가미로 작용할 수 있다.
전교조가 투쟁 아닌 개혁 노선으로의 방향 전환을 행동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정부의 시한부 강경 징계 방침에 유연성을 보이면서 양쪽이 휴전과 냉각기간을 두고 국회를 통한합의 과정을 도출시키기 위해선 이 길을 유도하고 절충하는 중재기능이 있어야한다. 양식 있는 교직자들의 모임이나 건전한 시민단체의 중재, 이와 함께 국회 문공위 또는 국회의 교육관계법소위 소속 국회의원등 사회의 완충 그룹이 적극 나서서 이 위기 국면을 넘겨야 할 것이다. 이 길이 건전한 사회의 양식 있는 해결방범임을 거듭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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