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활동 獨 NGO운동가 책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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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엔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없다.맥주병에 약품을 넣어 링거병 대신 사용하고 있다.수술용 마취제가 없어 가정에서 재배한 아편을 대용으로 쓰고 있을 정도다.”

독일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로 1999년부터 3년6개월간 북한에서 활동했던 마이크 브라츠케(30)가 폭로한 북한의 생생한 실상이다.브라츠케는 NGO가 파견한 시공 기술자로서 북한 전역을 다니며 병원의 수술실과 화장실 등 위생설비를 개선하는 작업을 했다.지원물자 조달도 담당했다.그래서 그는 북한 구석구석을 잘 파악할 수 있었으며 특히 의료 부문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게 됐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담아 『북한 ‘낙원’의 잔해-한 독일 청년이 지켜본 진실』(소시샤·草思社) 이라는 책을 썼으며 24일 일본에서 출간했다.이 책의 출판에 맞춰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북한을 방문한 한국인도 보기 힘든 최근의 현지 실상을 공개했다.

28일자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북한의 이라크전 관련 대응이다.그에 따르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한 지난 3월에는 북한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긴장된 분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북한 당국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평양 거주 외국인들의 평양 밖 여행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평양시내에는 수시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고,매주 등화관제 훈련이 있었다.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행진훈련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브라츠케는 “외국인 NGO 운동가들의 활동을 돕는 북한측 직원들은 신문에 난 전쟁기사를 보며 ‘다음은 우리 차례가 아니냐’는 불안감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TV에서는 특히 미국을 비난하는 보도가 늘었는데,독일이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북한 주민들은 독일인 NGO 직원들을 극진하게 대우했다.

그가 소개한 북한의 실상은 여전히 참담하다.그는 오랜 식량난으로 굶주림에 지친 사람 여럿이 대로변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밝혔다.그는 “북한의 최근 식량·의료사정이 참으로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경고하고 “빨리 도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브라츠케는 이번 저서 출판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북한의 현재를 보여주는 사진도 공개했다.그는 북한에 머무는 동안 현지 모습을 1천1백여장의 사진에 담았고,이중 1백70여장을 자신의 책에 실었다.
박소영 기자ol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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