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 귀가 통보에 일단 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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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하여 지난 주말부터 안기부 조사를 받고 있는 평민당의 이철용 의원이 조사 48시간만인 10일 오후 9시 귀가키로 하는 등 이 사건이 마무리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평민당은 이 의원이 출두하던 시점부터 김대중 총재를 비롯, 거의 전 당직자가 교대로 철야대기를 하며 수사의 진전을 지켜보았다.

<당 핵심 수사 여부 촉각>
평민당은 10일 아침 관계당국으로부터 이 의원을 귀가시키겠다는 통보를 받고 일단 안심은 하고 있으나 문동환 전부총재 등 그 동안 이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거론됐던 당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계속될지의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평민당은 이 의원이 풀려난 것을 계기 삼아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평민당은 이 의원이 일단 귀가하면 공안당국이 지금까지 평민당을 겨냥해 흘렸던 여러 혐의들이 정치 공작적 차원이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해나가면서 다른 야당의 협조를 얻어 곧 임시국회를 소집해 정부의 수사태도를 따질 예정이다.
한편 공안당국은 이 의원의 자진 출두를 계기로 이번 사건의 실체가 파헤쳐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 의원이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여 수사가 벽에 부닥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
당국에 의하면 이 의원이 지난번 유럽 여행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재독 교포 정규명씨와 접촉했던 사실 등의 배후가 이번 사건의 핵심인데도 이 부분에 묵비권을 계속 행사하고 있어 수사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일각에서는 이 의원 수사에 있어서는 초동단계부터 실수를 해 결국 평민당의 입지만 강화시켜주었다는 자성도 일고 있다.
특히 불고지 혐의 부분에서도 김수환 추기경·함세웅 신부 등 가톨릭 관계자들은 사전에 알았다는 점을 표명했으므로 참고인 조사가 가능했으나 평민당 고위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고 구속중인 서 의원도 입을 열지 않고 있어 평민당 관계자들에 대한 추가 참고인모사도 사실상 어려운 형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5일로 예정된 서 의원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가 나와봐야 이번 사건의 확대·종결에 대한 전망이 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왜곡 수사 폭로" 경계>
○…10일의 평민당 총재단 회의는 이철용 의원이 이날 중 풀려날 것이라는 전갈을 받자 이철용 의원의 결백을 다시 한번 확신하면서 대 정부 포문.
이날 회의는 일단 이 의원이 무혐의로 풀려나는 것이라고 자체 판단하고 안기부의 그 동안 수사태도에 대해 맹공.
이상수 대변인은 『서 의원 사건 발표직후 첫째주는 우리 당이 자숙의 태도를 보여왔고 둘째주는 정부당국의 평민당 와해 의도를 파악하고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해봤다』면서 『그러나 이번주는 본격적 반격을 개시해 공안당국의 수사가 과장 확대·왜곡되고 공작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확인시켜주겠다』고 경고.
이 대변인은 이와 함께 사법부에 대해서도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영장발부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이라고 강조.
○…평민당이 13대 들어 처음으로 전 당직자가 중앙당사에서 철야농성을 하게 된 것은 이철용 의원에 대한 신변 처리가 앞으로의 수사 방향에 분수령이 될 것이란 인식 때문.

<한때 이미 귀가설도>
주요 당직자들이 모두 중앙당에서 철야한 탓으로 평소 마포 당사에서 가져온 총재단 회의를 중앙당에서 열고 참석 범위도 주요 당직자와 「평민당 탄압 대책위」위원들까지 확대.
회의 도중 이 의원이 오후 9시쯤 풀려난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권노갑· 조승형 의원은 즉시 안응모 안기부 제1차장, 이건개 대검 공안부장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이를 확인하는 소동.
권 의원은『안 차장이 「우리는 처음부터 강제 연행하려 하지 않았다. 믿어 달라. 오늘 오후 9시전에는 반드시 귀가시키겠다」고 말했다』고 전언.
그러나 조 의원 등 평민당의 율사들은 이 의원이 빨리 나오면 나올수록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 이미 귀가했다는 일부 소문에 한때 긴장.
뭔가 혐의가 없을 경우 평민당과 약속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끌겠지만 확증이 있을 경우 후속 조치를 위해 빨리 내놓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
한편 평민당은 이 의원이 구속될 경우엔 초강경 대응을 한다는 내부방침이 섰다는 후문.
대책 위원장을 맡은 김원기 특보는 『이 의원에 대해 증거 없는 혐의를 씌울 경우 당운을 걸고 투쟁하겠다』고 주장.

<김 총재도 비상대기>
○…평민당은 이철용 의원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가 진행된 지난주 말 김대중 총재를 비롯한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이 여의도 당사에서 교대로 밤을 새우며 이 의원에 대한 조사를 예의 주시.
8일 밤 동교동 자택에서 이불까지 가져와 의자에 앉은 채 밤을 새운 김 총재는 일요일인 9일에도 오후 3시쯤부터 당사에 나와 대기하다가 저녁 8시20분쯤 귀가.
김 총재는 일요일 아침 함께 밤을 새운 의원 및 당직자 40여명과 함께 마포에서 설렁탕으로 해장을 한 뒤 성당미사에 참석했다가 자택에서 둘째 손녀의 생일 축하를 해주고 다시 당사로 출근.
그러나 김 총재가 밤을 새운 탓인지 감기 기운이 있는데다 저녁 8시쯤 당국으로부터 『아무래도 하루 더 철야 조사를 해야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자 귀가했고 문동환 전 부총재, 박영록·최영근 부총재, 김원기 특보, 허경만 국회상공·정대철 문공위원장, 신기하 총무대행 및 한광옥·박상간·조승형·조홍규·박석무 의원 등이 밤샘.
평민당측은 이 의원이 당초 일요일인 9일 저녁에는 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수 있으리라고 은근히 희망했으나 조사 시간이 길어지자 「혹시나」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모습. <이연홍·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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