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아지는 주방=현진은 5일부터 청약하는 부산 정관지구 아파트의 37평형과 59평형에 주방을 앞쪽에 배치했다. 이 회사 홍융기 이사는 "주방이 전면에 배치되면 햇빛을 많이 받고 바람이 잘 통한다"고 말했다. 37평형의 경우 방 3개와 거실, 주방이 모두 '일(一)'자로 베란다를 통해 바깥과 접하는 5베이(아파트 앞면을 가르는 형태:방+방+주방+거실+방) 구조인데 주방이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대우건설은 8월 분양하는 판교신도시 중대형 평형 단지 40평형대의 주방을 전면에 설계했다.
주방의 전면 배치는 2002년 5월 분양된 대구 북구 침산1차 푸르지오에 처음 선보인 이후 뜸하다가 지난해 화성 동탄신도시 분양 등에서 간혹 눈에 띄었다. 올해 들어서는 부평 중동 2차 푸르지오, 수원 e편한세상, 강릉 더샵 등 웬만한 분양 아파트에 빠지지 않는다.
주방은 앞으로 나오는 데 그치지 않고 거실과 나란히 붙는다. 주방과 식당.거실이 하나인 'LDK(Living.거실, Dining.식탁, Kitchen.주방)평면' 으로, 업계는 주부가 주방에서 일을 하며 거실의 가족과 접하기 쉽기 때문에 '대면형 평면'으로도 부른다.
이런 평면은 도입 초창기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갈수록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7차 푸르지오 34평형 가운데 2003년 분양 때는 뒤쪽에 배치된 주방이 인기를 끌었으나 지난해 말 입주 후에는 주방이 앞쪽에 들어선 평면이 1000만~2000만원 더 비싸졌다.
쌍용건설이 올해 경남 김해시와 대구 수성구에서 분양한 단지들에선 주방이 전면에 배치된 타입의 계약률이 높게 나타났다.
주부의 위상 변화와 함께 안방 중심의 가족 생활문화가 달라졌다. 안방의 역할이 대화 등 가족 간 교류의 공간에서 잠만 자는 침실로 바뀌었다. 주방이 앞으로 배치되는 대신 주방 자리에 있던 안방이 뒤로 빠지는 추세다. 대우건설 이건영 차장은 "가족생활의 중심 공간이 안방이었으나 이제는 함께 먹고 얘기하는 주방과 거실로 바뀌고 있다"며 "다만 설거지 소리 등이 거실에 그대로 전달되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주방이 요리.식사.거실의 기능을 모두 갖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5일자의 주방 특집기사에서 2년 전 상영된 영화 'Something Gotta give'(국내에서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 나오는 주인공 다이앤 키튼의 뉴햄프셔 별장 주방이 지난 2년간 맨해튼 부유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보도했다. 흰 수납장과 가운데 넓은 아일랜드형 작업대 등을 갖춰 영국 컨트리풍으로 불리는 이 주방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가족.친구들이 모이고 싶은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주방에 대해 달라진 소비자들의 욕구를 따라 이탈리아의 고급 주방가구업체인 스키피니는 최근 내놓은 제품의 브랜드를 '일광(daylight)'으로 지었다. 이탈리아 주방시장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베네타쿠치네는 제품 전시장을 햇볕이 따사한 거실 분위기로 꾸며놓았다.
밀라노=신혜경 전문기자, 안장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