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칼럼

감사원과 재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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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색하고 비분강개하기엔 다소 희극적이고, 한 토막 소극(笑劇)으로 넘기기엔 너무 비극적이다.

지난달 19일 외환은행 매각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는데 한마디로 싸게 잘못 팔았다는 것이다. 은행 경영진은 물론 감독 당국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었다. 이 발표가 나온 다음 날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무서운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피감기관이 이토록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는 것은 드문 일이다. 과거에도 감사 결과에 대해 더러 억울하다고 뒷소리를 한 적은 있으나 공개적으로는 못 했다. 재경부와 금감위로선 너무 억울해 집안단속용으로도 가만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틀 뒤인 21일엔 다시 감사원의 입장 발표가 나왔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정확하며 재경부와 금감위의 해명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상 감사의 최고기관인 감사원과 경제 정책의 총괄 부서인 재경부가 정면으로 붙은 것이다. 그것도 사소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매각의 타당성과 적법성에 대한 근본적 견해 차이에서다. 흥미진진하지만 웃으며 관전하기엔 일이 매우 심각하다. 이미 둘 다 상처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감사원은 감사 내용에 대해 공개 공박을 받은 것만으로 그 권위에 흠이 갔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파는 데 한몫 거든 것이 되었으니 세상에 면목 없게 됐다. 앞으로 금융기관을 지도 감독하기가 다소 겸연쩍게 되었고 소신 있게 일을 처리하라는 소리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부 전체의 컨센서스에도 문제를 드러냈다. 주요한 부서끼리 백주에 드잡이를 한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잘못한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감사원은 국회재경위의 요청대로 지난 3개월간 공식.비공식 문서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감사를 했고, 재경부와 금감위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혔다는 주장이다. 감사에 대한 불만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은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신학 논쟁도 아닌데 왜 그토록 견해 차이가 심했으며 좀 더 일찍 의견 조정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결국 실무적으로 옳은 것끼리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그 차이를 메워 주는 것이 정치고 경륜이고 리더십인데 그것들이 실종 상태이니 모두가 상처를 입는 것이다.

일단 공은 검찰로 넘어갔는데 매우 지루하고 피곤한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론스타가 단기간에 너무 큰 이익을 봐 국부 유출이 심하니 잘못한 사람을 밝혀 처벌해야 한다는 기대가 높다. 그래서 재경위도 국회에서 따지다 못해 감사 청구를 했을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경과와 비슷하다. 당시에도 국민의 빗발 같은 원성 때문에 국회가 청문회도 하고 감사원이 나서 대대적인 감사를 했다. 주로 재경원과 한은이 대상이 됐다. 감사원으로선 한계가 있어 최종적 수사는 검찰에 넘겼지만 여론이 기대한 만큼의 시원한 결말을 보지 못했다. 외환위기가 여러 요인이 겹쳐 일어난 것이고 정책적 판단은 사법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사법부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번 환란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겠지만 무쪽 자르듯이 사실 관계를 규명하기 어려운 점에선 비슷하다. 특히 정책 결정의 판단 문제로 가면 더욱 그렇다. 검찰로서는 벅찬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감사원 발표에도 "현재까지 감사 결과 예외 승인이 무리하게 이뤄지는 등의 하자는 있으나 그 과정에서 론스타의 기망 행위가 발견되지 아니하여…" 등의 표현이 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으므로 개개인의 부정이 있었다면 드러나겠지만 정책 판단을 둘러싼 잘잘못은 지루한 공방전을 겪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로 보면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나 정책 결정과 그 책임이라는 문제에 있어 또 하나의 좋은 판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선진화로 가는 하나의 성장통(成長痛)이라 생각하면 다소 위안이 될 것이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