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치는 인테리어·이사…오늘도 날품팔이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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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삿짐이 옮겨지고 있다. 공정식 프리랜서 기자.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삿짐이 옮겨지고 있다. 공정식 프리랜서 기자.

서울 관악구 일대에서 18년 동안 이삿짐센터를 운영해온 강일영 씨(가명·56)는 최근 폐업 신고를 했다. 주택 거래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사 일감이 덩달아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사하는 소수의 사람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강 씨 같은 등록업자 대신 무허가 업자를 많이 찾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견디기 어려웠다.

주택시장 침체로 관련업계 타격 #서울 아파트 매매 반년새 90% 뚝 #집수리 수요 줄어 업체 줄폐업 #“취득세 내려 거래 숨통 틔웠으면”

게다가 현재의 주택 시장 규제 정책이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어서 사업 여건이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없다. 강 씨는 “갑자기 다른 일을 할 엄두가 안 나 대책 없이 쉬고 있다”며 “자식들 장가도 보내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말했다.

주택 거래가 실종되다시피 하면서 이사업 등 '골목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집값 안정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작용이다. 서민 삶의 터전인 골목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서울시이사화물주선사업협회에 따르면 서울의 포장이사 업체들은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당시 업체당 한 달에 평균 10건가량 이삿짐 운반을 했는데, 요즘은 5건 정도로 반 토막이 났다. 협회 오성근 사무장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업자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말부터 주택 거래량이 급감한 게 주요 원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의 지난달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590건(잠정)으로 전년 동기(1만1111건) 대비 90% 가까이 떨어졌다. 이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2월 기준으로 역대 최저치다. 전체적으로 보면 2013년 1월(1196건) 이후 두 번째로 낮다.

인테리어 업계도 주택 ‘거래절벽’의 유탄을 맞았다. 서울 강남구의 인테리어 업체에서 이사로 일하던 최성일 씨(가명·38)는 지난해 말 대표이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일감이 갑자기 바닥나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최 씨는 대표를 상대로 밀린 월급 3개월 치와 퇴직금을 달라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관리자가 아닌 인부로라도 일하려고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고 있는데, 인테리어 일감 자체가 줄어드니 일하는 것보다 공치는 날이 훨씬 많다”고 하소연했다.

손원일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 사무국장은 “올해 들어 인테리어를 할까 상담하려는 발길 자체가 끊어졌다”며 “당장 버티기가 어려워 폐업하는 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꾸미려는 수요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기침체에 따라 프랜차이즈 상점 등 상업시설의 인테리어 수요가 급감한 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아파트에서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현주 기자.

한 아파트에서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현주 기자.

공인중개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공인중개사 개업 건수는 8301건으로 전년 동기(9172건) 대비 1000건 가까이 감소했다. 반대로 폐업 건수는 7274건에서 7996건으로 700건 넘게 증가했다.

1월 신규 공인중개업소 수를 보면 올해 1973건으로 2015년(1898건) 이후 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쪽에선 "주택매매 수요가 임대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임대 거래량은 증가하고 있고, 그래서 괜찮은 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매매 거래량의 낙폭을 만회하기에는 부족하다. 서울의 아파트 매매·전세·월세 거래량을 합해 보면 지난해 2월 2만8641건에서 올해 2월 2만1368건으로 25% 넘게 빠졌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임대보다는 매매 거래가 활성화돼야 연관된 골목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며 "매매 거래일수록 공인중개 수수료가 많고 집 내부를 수리하는 인테리어 수요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전면.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전면. [연합뉴스]

업계는 "주택 거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의 정책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최소한 골목 상인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보조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 등의 대안을 내놓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값 자극을 우려해 주택 규제를 전반적으로 풀기 어렵다면 취득세만이라도 인하해 거래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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