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유럽 '열린 미술관' ④랑겐 파운데이션 → 독일 라케텐스타치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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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감자밭 한가운데 납작한 건물 하나가 오뚝하다. 노이스 시(市)에서 쾰른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펼쳐지는 벌판의 이색 지대 '랑겐 파운데이션'(사진) 미술관이다. 일본 미술품 소장가로 이름난 빅토르.마리안느 랑겐 부부가 2004년 9월 개관했다. 50여 년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던 '라케텐 스타치온' 터를 미술의 보물창고로 만든 이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의 결합 매무새가 멀리서도 '안도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미술관 들머리는 안도가 즐겨 쓰고 좋아하는 물이다. 얕은 연못을 깔아 미술관으로 접근하는 이의 마음을 씻어낸다. 안도가 애호하는 노출 콘크리트 박스 벽과 유리는 같지만 이번에는 콘크리트 상자를 유리 상자가 한 겹 덮어썼다. 상자 속의 상자다. 일본 전통 건축 특유의 다다미를 연상시키는 격자 나눔의 사각형이 유리와 콘크리트로 반복된다. 안도가 건물에 부여하던 침묵의 벽은 더욱 견고해졌다. 유리와 콘크리트 사이에 자연스레 난 회랑을 따라 걷는 맛이 괜찮다. 한 겹 유리창 너머로 들판이 손에 닿을 듯 펼쳐진다.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맺어주는 집이다.

'라케텐 스타치온'은 오랫동안 냉전시대의 그늘에 가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던 사각지대다. 이곳에 세계 건축계가 손꼽는 안도 다다오의 건물이 들어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노이스 시는 '랑겐 파운데이션' 미술관을 중심으로 문화지대를 일구려 작가들에게 싼값에 작업실 터를 분양했다. 교통은 좀 불편해도 널찍한 스튜디오를 마련할 수 있어 1년 새 벌써 여러 채의 작업실이 섰다. 지금은 너른 땅을 보고 찾아온 행글라이딩 애호가 몇 명이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몇 년 지나면 미술관과 작업실 투어를 위해 먼길을 달려온 관람객으로 붐빌 것이다.

쾰른.노이스(독일), 바젤(스위스)=글.사진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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