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칼럼] 대형할인점 규제 신중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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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10년간 할인점을 중심으로 한 유통산업의 급속한 발전은 소비자가 주도하는 신유통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할인점들의 대형화와 체인화로 지역상권의 반발이 심화하면서 할인점 설립에 대한 조건이 강화되고 심지어 지역법인화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유통 업체의 대형화가 영세 상인의 몰락을 가져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우수한 상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됨으로써 경쟁력없는 지방 중소기업의 제품이 밀려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통산업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대형 할인점을 규제하면 지방경제가 활성화하고, 영세 상인의 생업이 보장될 것인가.

대형 할인점은 오히려 지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대형 할인점이 지역 주민에게 주는 편익은 크다. 우수한 정보 네트워크와 대량 구매능력, 운영 전문화에 따른 효율성을 바탕으로 대형 할인점은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해 주민의 실질소득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지역법인화'는 지역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 기업을 지역별로 쪼개 '독립 법인화'하면 규모가 영세해져 규모의 경제효과를 상실하는 반면 비용은 크게 증가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으며, 지역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자체나 지역 시민단체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규제와 적대행위가 아니라 지역 중소기업이 대형 유통업체와 협력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상품을 적극 발굴하고 특화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갑자기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게 된 영세 상인을 위한 대책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흐름을 해치지 않는 방법이어야 한다. 지역경제를 살리자고 시작한 일이 자칫 지역경제를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황의록 아주대 교수 前한국유통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