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경제후퇴' 어떻게 살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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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프랑스 혁명을 자초한 루이16세는 단두대로 가는 계단에서 "나는 10년 전부터 이 모든 것이 올지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의 한국 경제 상황과 이에 대한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자세는 불행했던 루이16세의 어리석은 말을 떠오르게 한다. 현재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각종 경제현안들은 건전한 경제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오래 전부터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정책 당국자들만이 실상과 달리 잘 되겠지 하는 우연을 바라면서 믿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 1997년 상반기부터 외환위기가 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한국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이상이 없다고 강변을 하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체험한 기억을 갖고 있다.

*** 과거 정부 운영방식 그대로 베껴

물론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참여정부에 의해 갑자기 나타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지난 7개월간 새 정부답지 않게 경제에 관해 지나칠 정도로 안이한 생각을 갖고 과거 정부의 경제운영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현재의 경제상황을 초래했으므로 이의 해결은 현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초기에 나타난 성장둔화를 단순한 경기의 일시적 현상으로 생각하고 2분기에 경기가 바닥을 치고 하반기에 가면 미국 경기의 회복과 함께 국내 경기도 회복돼 연 5%의 경제성장이 무난하다고 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미국 경제를 비롯해 세계 경기가 회복을 보임에도 한국 경제만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IMF.한국은행.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을 2%대로 하향 수정 발표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최근의 급격한 원-달러 환율의 변동은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성장률을 더욱 둔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간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성공할 수 있는 정책 처방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왜 한국 경제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와 설명이 있어야만 한다.

과연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경기주기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왜 경기안정 정책 도구들이 적극적으로 투입될 수 없는가? 한국 경제는 97년 IMF사태 이후 현재까지 세번째 '경제 후퇴'를 맞고 있다. 첫번째는 98년 6.7%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것은 1백조원 이상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극복됐다.

두번째는 2000년 하반기에 금융 경색으로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자 이번에는 50조원을 초과하는 공적자금과 가계부채 증가,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행, 투기 조장 등으로 성장을 유지했다. 세번째가 2003년 현재 나타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다.

이와 같이 지난 5년간 단기간에 걸쳐 반복되는 경제 후퇴는 단순한 경기주기로 설명될 수 없고 투입된 정책도구 또한 통상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현재의 '경제 후퇴'는 그간 투입된 경제정책이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동성은 풍부하고 금리는 건국 이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통화정책은 한계에 달해 있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기업들은 노사 문제, 정부의 각종 규제와 일관성 부족 때문에 투자를 꺼리고, 시장에서의 수요부족으로 이윤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 미래 불안 없애기에 주력해야

일반 가계는 IMF사태 이후 중산층의 붕괴와 소득분배의 양극화 현상으로 대다수 가계가 생존을 위한 소비 이외에 소비능력이 없고, 상위 소득계층은 이미 소비의 충족을 이루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소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왜곡된 구조와 함께 공급과 수요 양 측면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국민의 미래경제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정책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고, 경제주체들은 정부 정책을 불신하고 있다.

따라서 현 경제상황은 경제정책에 관한 대통령의 합리적이고 과감한 리더십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리더십은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발휘될 수 있다.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