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추리극 추악한 장면이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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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시청자들은 좋든 나쁘든 TV를 보고 그 주인공을 배운다. 따라서 전국의 시청자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전파를 쏘아 보내는 방송, 특히 전가족이 함께 보는 TV드라마는 교육적 영향력을 고려해야함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애정물에 식상한 시청자를 위해 새롭게 시도된 추리극 형식의 드라마인 MBC주말연속극『유산』과 KBS-2TV 미니시리즈 『숲은 잠들지 않는다』가 따스해야할 안방 분위기를 사정없이 유린하고 있다.
두 드라마는 모두 거액의 재산 분배를 둘러싼 음모와 살인을 주요 줄거리로 하고 있는데 이미 다섯 사람이 피살된 데 이어 지난 일요일에도 『유산』에서 휠체어를 탄 주인공이 휠체어와 함께 강물 속으로 던져져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다. 변호사가 남의 뒷조사를 위해 서류를 홈치고, 고위관료와 호텔 사장이 내연의 처를 두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추악한 사회상들이 끊임없이 극중에서 모습을 드러내 시청자들의 의식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면에는 황금만능주의라는 그릇된 가치관이 숨어 해악을 더하고 있다.
또 화려한 상류사회가 배경이 돼 부유층·특권층 등이 등장, 고급 승용차로 한강 상류의 호화 별장지대를 누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극중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때 진정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간접 경험의 세계도 넓혀갈 수 있다.
황금의 노예인듯한 부유층 등장 인물의 비정상적 사고 방식과 지나치게 화려한 생활상은 화면에 빨려 들어간 시청자에게 허상만을 남길 뿐이다. 추리극이 가지는 긴박감과 흥미로 시청자들의 시선은 끌 수 있어도 내면의 공감대를 울릴 수는 없으며 오히려 위화감과 상대적 상실감을 조장하게 된다.
추리 소설을 TV드라마화하면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잔인한 장면을 화면을 통해 너무 강조하는 각색·연출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물론 TV의 속성상 시청률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방송이 시청률 확보라는 상업적 가치에만 안주할 때, 현대사회의 최대 정보 매체인 TV는 결코 건전한 문화 창출의 소임을 다할 수 없다.
TV드라마가 잘 팔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상품으로서만 아니라 제작자의 창작욕과 문제 의식이 번득이는 작품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해야만 지금까지 외면해 온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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