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 신협도 "남자만"…고용시장의 '성차별 미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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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은 지난해 청원경찰과 청원산림보호직을 채용했다. 채용공고문에는 지원 자격을 남자로 한정했다. 국가 경찰직에도 여성 경찰이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성을 지원단계에서부터 아예 배제했다. 고용노동부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공고문을 시정하도록 지시했다.

고용부 익명신고센터 신고, 직전 2년의 두 배 #카페 바리스타 뽑으며 '남자 군필자'로 한정 #"기혼자 채용 계획 없었다"며 퇴사 종용하기도 #입사 뒤엔 여성 근로자만 특정 직군으로 몰아

지방자치단체조차 고용시장에서의 성차별이 이 정도니 민간부문에선 오죽할까. 심지어 모 카페는 바리스타를 채용하면서 '남자 군필자'로 대상을 한정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커피를 만드는 데 왜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남성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지난해 9월 10일부터 올해 1월 9일까지 이런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했다. 일종의 '고용 미투'다. 4개월 만에 122건이 접수됐다. 하루 한 건꼴이다. 직전 2년 동안 신고된 건수(101건, 2017년 39건, 2018년 62건)보다 두 배 넘게 많았다. 익명신고센터였지만 실명으로 신고한 경우도 49건이나 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관계 때문에 성차별을 받더라도 신고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익명신고센터로 운영했다"며 "그러나 여성 근로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실명 신고도 많았다"고 말했다.

차별 유형별로는 모집·채용을 하면서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63건(51.6%)으로 가장 많았다. 재직자의 경우 교육·배치·승진 차별이 33건, 임금과 임금 외 금품이 26건, 정년·퇴직·해고와 관련된 사안이 22건(중복 신고)이었다.

채용 과정에선 여성을 원천 배제하는 사례가 많다. 전북 익산의 모 신협은 여성 구직자에게 "여자는 지원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방문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신협은 그제야 이를 시정했다. 고용부는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면 행정제재와 처벌(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면접을 보면서 결혼이나 임신계획을 묻는 회사도 있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후 퇴사하는 직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에둘러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키나 몸무게를 묻거나 언급하는 기업도 행정지도를 받았다.

지난해 6월 18일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예정된 이사회에서 처리할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 규준'에 성비 공개를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18일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예정된 이사회에서 처리할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 규준'에 성비 공개를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사한 뒤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모 회사에선 여자 직원이 유독 특정 직군을 선택하는 분위기였다. 이 직군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적게 올랐다. 알고 보니 회사가 임금인상 폭이 낮은 직군으로 유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부는 '고용평등 근로감독 대상 사업장'으로 분류했다. 업무와 무관한 행사에 여성 근로자만 동원하거나 비서직의 대체업무에 무조건 여성 근로자만 배정하는 경우도 행정지도를 받았다.

임금 차별을 받았다는 신고가 26건이었지만 성차별로 보기엔 힘들었다. 대부분 성별 차별이라기보다 업무가 다르거나 직종 간 구분이 명확한 경우였다. 여성 근로자가 심리적으로 막연하게 차별받는다고 느낀 경우였다는 얘기다.

여성 근로자가 결혼이나 출산했다는 이유로 퇴사를 권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실이 확인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모 회사는 여성 근로자가 입사한 뒤 해당 근로자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자 사업주가 "당초 기혼자는 고용할 생각이 없었다"며 퇴사를 권고했다. 자녀 유치원 등원시간 때문에 지각하는 일이 생기자 이런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부는 신고된 사건에 대한 사실 확인을 거쳐 53건을 행정지도하고, 사안이 심각한 3건에 대해서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나영돈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신고된 성차별 사례들은 지난해 있었던 일"이라며 "성차별이 아직도 만연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나 실장은 "성차별을 예방하고,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제보가 필요하다"며 익명신고센터 활용을 당부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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