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외무, 유엔호 새 선장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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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반기문 외무장관은 지난 5월 31일 뉴욕 맨해튼의 미 외교협회(CFR) 오찬 모임에서 연설했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의 억양이 강한 영어였지만 반 장관은 차분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내용 하나하나가 전혀 흠잡을 데 없었다. 유엔이 악명 높은 '제로섬 게임'을 탈피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 장관의 말은 한마디로 외교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축소판인 셈이었다. 어느 누구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았지만 세계 최대 국제기구인 유엔의 사무총장에 선출되면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점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거의 없었다. 반 장관은 자신이 "화합론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는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우리 후세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유엔에 절실한 문제는 화합만이 아니다. 이라크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의 부패 의혹으로 유엔은 얼굴에 먹칠을 했고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사퇴 압력까지 받았다. 독자적으로 이라크전을 일으킨 미국은 유엔의 무능함을 질타해 왔다. 이라크전의 지지부진함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인기는 계속 추락 중이다. 다른 나라 역시 미국을 좇아 유엔의 능력과 필요성에 의문을 표한다. 유엔의 운영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비판자들이 점점 늘어난다. 올해 후반 코피 아난(5년 임기가 12월 31일 끝난다)의 후임이 선출되면 신임 사무총장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유엔이 현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회의론자들에게 입증하는 일이다.

반 장관은 현재까지 차기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 3명 중 하나다. 나머지 두 명은 스리랑카의 자얀타 다나팔라 전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과 태국의 수라끼앗 사티아라타이 부총리다. 그러나 그들이 출마를 선언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리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유엔 사무총장 선출 과정은 '눈 가리고 아웅'식이었다. 물밑 로비,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사이의 힘겨루기, 후보자들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부여하려는 흥정이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늘 개입됐다. 브라이언 우르쿠하트 전 유엔 사무차장도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미궁 중 가장 복잡한 절차로서, 늘 강대국들 간의 비밀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출 과정의 어느 시점에 어떤 변수가 돌출할지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유엔은 전혀 의외의 인물을 사무총장으로 선출한 적이 적지 않았다. 초기 사무총장 중 한 명인 스웨덴의 다그 함마르셸드는 1953년 4월 1일 사무총장에 선출됐다는 통보를 받을 때까지 자신이 출마했는지조차 몰랐다. 그 소식을 듣고 함마르셸드는 처음에는 만우절 농담이겠거니 생각했을 정도였다.

뉴스위크 MALCOLM BEITH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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