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축전에 못 갈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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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대학생들의 평양축전 참가를 불허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남북대학생 교류추진 위원회를 통한 참가와 전대협의 독자적 참여 주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공전만을 거듭하기 3개월여, 결국 참가 불허라는 「어쩔 수 없는 결정」으로 끝나버렸다.
우리는 정부의 이 불허방침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십분 이해하면서도 남북화해의 기운에 도움이 될 대학생 교류가 차단되어 버린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평양축전 참가는 그 형식에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반핵·반제 연대성 강화를 주제로 내건 공산 사회주의 국가의 청년들이 모여 자유주의 국가를 규탄하면서 그들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자리에 공산당은 물론 사회주의 이념정당마저 합법시 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평양축전에 학생들의 참여여부를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동안 쌓인 남북한의 장벽에 작으나마 구멍을 뚫어 서로의 위화감을 해소하면서 점진적 교류를 거듭하고, 나아가 화해의 자리를 마련함이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고 합의였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는 평양축전 학생 참가를 환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3개월 동안 전대협은 반미를 내걸고 캠퍼스마다 북한을 미화하고 북의 체제와 사상을 치켜세우는 연극을 공연했다. 북의 인공기가 새겨진 포스터가 학원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는가 하면 평양거리를 모방한 이름도 붙여졌다.
국민이 합법적으로 선택한 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미국 국기를 교문 앞 길바닥에 깔아 놓고 밟도록 반미를 선동하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 경향성을 보이는 대학생들에게 평양축전 참가를 허용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북의 체제, 북의 이데올로기를 미화하고 그 환상에 사로 잡혀 있는 일부 대학생들만을 축전에 보낼 수 없다는 것 또한 국민적 공감이다.
결국 남북학생 교류라는 화해의 한 가닥 길을 학생들 스스로 막은 셈이다. 남북학생간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그 기대를 허물어버린 책임은 반이성적·비타협적 운동권 학생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나마 마지막 남은 기대라도 있다면 추진위원회 주도에 따른 축전 참가를 국민적 여망으로 받아들이고 폐쇄 사회 속의 북한 실상을 바로 알아보는 기회가 이들 학생들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이지만 그동안 학생들이 치달은 방향으로 보아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평양축전에 참가해야할 명분은 북을 올바로 알자는데 있는 것이다.
북의 축전에 부화뇌동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북의 실상을 바로 파악하고 우리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평양축전 불허 방침을 단순한 경색적 선회라고는 볼 수 없다. 불허 방침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일부 학생들의 투쟁적·비타협적·친북한 환상이 깔려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평양축전 참석은 남북 이해 증진에 뜻이 있는 것이지 들뜬 감상 속에서 일방이 타방에 휩쓸리는 결과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아래 처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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