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업소와 과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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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무당국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대규모 유흥업소나 그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금출처 조사 등의 정밀 내사에 다시 나서기로 했다.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성 행사요, 또 사실 세무당국이 탈루 세원을 찾아낸다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충실해야할 본연의 임무이지 무슨 시기나 특별한 대상을 가릴 캠페인성의 행사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세무당국의 조치만큼은 예사롭게 치르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모두는 일찍이 그 전례가 없을 만큼 정치·경제·사회가 서로 맞물린 구조적 전환의 요구에 직면해 있고, 특히 경제부문에서 자칫하면 수렁에 빠질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올 1·4분기 GNP상의 제조업 성장률이 1%에 그쳤고, 설비투자 증가율이 2.1%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주목하고자 한다.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섬뜩하기까지 한 그 같은 저조한 실적치가 비록 상당부분 노사분규 등의 불규칙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한편에서 벌어지는 민간소비의 높은 증가율과 물가상승은 대단히 경계할 일이다.
건전한 투자의 위축과 탈제조업 풍토 속에서 사치와 호화와 향락이 판을 치고, 그로 인한 서비스 가격의 상승이 물가를 부추기며, 그 결과로 저 성장 속의 인플레라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점점 현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장과실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불안의 큰 요인으로 부각돼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이다. 우리는 결코 정당한 부의 향유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부의 향유를 너그러이 용인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사치와 호화에 대한 세무 당국의 정밀 내사는 그 같은 경제 운용의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으로서 매우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거듭 지적하는 바이지만 그 같은 당국의 노력은 일과성으로 지나기 쉬운 대중적 접근이지 경제 운용의 체제를 바로 잡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
사치와 호화에 대한 근본 처방은 역시 돈의 흐름이 처음부터 건전한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고, 부의 축적에 사회 전체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도 되게끔 세제와 금융 등의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번 세무당국의 조치를 계기로 다시 한번 투자환경의 정비를 정부에 촉구하고자 한다.
서비스 업종에의 손쉬운 투자를 제조업 부문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서비스 업체에 대한 특별 세무대책 외에 제조업에 대한 자금지원·기술지원·세제·노동정책 등 투자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서비스 업체의 호화·대형화는 과소비를 더욱 부채질해 결국 생산과 소비 양면에서 우리경제를 병들게 한다. 정부는 사회적 풍조나 사회적 갈등의 해소라는 측면과 아울러 경제적 구조의 측면도 고려해 과소비 문제의 근원에 손을 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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