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축제의 부름 "네 색깔을 보여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

김규원 지음, 시공아트
308쪽, 1만5000원

지상 최대의 축제 월드컵이 한창이다. 한국 대 스위스전이 벌어진 24일 새벽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 악마가 됐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나 응원 인파는 공통된 색으로 하나가 된다. 월드컵 축제에서 한국은 붉은색, 우리와 맞붙은 토고는 초록색, 프랑스는 파란색으로 통하듯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기준도 색깔이다.

저자는 유럽 각지의 유명 축제를 찾아다니며 이들의 색깔을 담아낸다. 여정은 붉은 악마의 색깔과 닮은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에서 시작된다. 투우사의 칼 끝이 등을 지나 심장을 뚫는 순간 집채만한 황소는 선혈을 내뿜으며 쓰러진다. 이곳에서 저자는 고대 제사 의식의 흔적을 발견한다. 속죄를 상징하는 핏빛으로 물든 투우장은 광기 어린 붉은 축제의 절정이라는 것이다.

지금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독일인들은 금색 사랑이 유별나단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독일 뉘른베르크의 밤은 금빛 축제에 물든다. 공교롭게도 독일 근대 역사상 국기에 금색을 사용하지 않았던 북부독일연맹 시절, 독일 제1제국 시절, 나치 통치 기간은 처참한 전쟁과 독재로 얼룩졌다고 한다. 노란빛으로 물든 프랑스의 덩케르크 카니발, 프랑스 아비뇽의 초록색 축제와 스위스 바젤의 파란색 축제, 바다색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등을 거쳐 열일곱 색깔이 각각 살아 있는 토스카나의 팔리오 축제에 이르러 빛의 향연이 마무리된다.

자칭 '축제 사냥꾼'이라는 저자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축제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색깔이 없는 축제는 진정한 축제가 아니라는 저자의 지론에 따라 책에 담긴 축제들은 하나같이 뚜렷한 빛을 내뿜는다. 각각의 축제와 그 빛깔에 얽힌 지식과 이야기를 주워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학벌과 나이 등 이력서 첫 장에 주절주절 공식같이 등장하는 문구'가 아닌 '독특한 그 사람만의 매력'으로 사람을 보게 됐노라고 서문에 밝혔다. 일상에 파묻혀 무채색으로 퇴색해버린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축제 속으로 뛰어들라고 충동질하는 듯하다.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