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급 오페라단 지휘 한국인으로 긍지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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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불 바스티유 오페라단 지휘 맡은 정명훈씨>
유럽에서 활동중인 지휘자 정명훈씨(36)가 25일 파리의 국립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바스티유 오페라는 프랑스정부가 유럽정상의 오페라 극장으로 육성하려고 짓는 파리의 새 오페라 극장으로 정씨의 취임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세계 정상급 음악단체의 책임자가 됐다는 점에서 세계음악계를 놀라게 하고있다.
이날 완공을 서두르고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안 원형소극장에서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정씨의 취임을 공식 발표한 오페라 드 파리의 「피에르·베르제」이사장은 정씨의 전임자 「대니얼·바렌보임」해임이후 세계정상급 지휘자들 중에서 후임자를 물색한 끝에 「젊음과 과감성」을 택해 정씨를 바스티유 오페라를 이끌어갈 새 음악감독으로 초빙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취임회견을 통해 세계정상급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일하게 된 것은 음악인으로서 크나큰 영광이라고 말하고 기대에 부응토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4억4천만달러가 투입된 2천7백 석 규모의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은 프랑스혁명 2백주년 전야인 오는 7월13일 개관할 예정인데 정씨의 계약기간은 5년으로 1년에 6개월씩 이곳에서 일하며 한해에 30번 연주하도록 돼 있다.
정씨는 현재 서독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겸 이탈리아 피렌체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일하고 있는데 이들과의 계약기간은 1990년에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극장측과 연주프로그램 구성상의 이견으로 마찰 끝에 3개월 전 해임된 「바렌보임」(현 시카고 심퍼니 상임지휘자) 후임으로는 정씨외에 「르네·곤살레스」.「엘리아후인발」, 「마레크·잔보스키」, 「리카르도·샤이」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떠오르는 세대」의 신진기예인 정씨가 「바렌보임」의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정씨는 처우문제에 입을 열지 않았으나 연봉 1백만 달러 이상 받은 「바렌보임」보다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 10대 지휘자 가운데 한명 인 「바렌보임」후임으로 정씨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일부 프랑스 음악계 인사들은 「조르즈·프레트르」,「미셸·플라송」,「알램·롱바르」, 「실뱅·강브렐링」등 오페라 지휘 경험이 많은 국제수준 급 프랑스인 지휘자를 제치고 오페라지휘 경험이 많지 않고 「일부에만 알려진」한국인 정씨가 내정된 데 대해 한때 적지 않은 놀라움과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씨는 이날 합동기자회견 후 한국기자들과의 간략한 회견에서 『한국인 지휘자로 최초로 세계정상급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이 된 것은 개인으로나, 민족으로나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고 말하고 『그러나 앞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할 한국인 후배음악인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돼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회견장에는 정씨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와 부인 조순열씨, 금자경 오페라단의 금자경씨 등이 나와 정씨의 회견을 지켜보았다.
정씨는 당초 피아니스트로 출발, 75년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2위 입상했으며 75년 뉴욕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3년간 지휘자 수업을 마치고 로스앤젤레스 필하머니 오키스트라 「카를로·마리아·줄리니」의 부 지휘자로 일했다.
83년 유럽에 와서는 베를린필, 윈헨필, 암스테르담 필, 런던 심퍼니, 런던 필, 국립프랑스 오키스트라, 파리오키스트라 등에서 객원 지휘를 했다.
미국에서는 정기적으로 뉴욕필, 보스턴 심퍼니, 클리블랜드 오키스트라, 시카고 심퍼니등을 지휘했다.【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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