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3·4호기 중단 울진 현장 가보니…인부 '썰물'에 숙소·식당 직격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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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 신한울원전 1·2호기 건설현장 앞에 내걸린 현수막. 울진=김정석기자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 신한울원전 1·2호기 건설현장 앞에 내걸린 현수막. 울진=김정석기자

지난 25일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 신한울 제1·2건설소. 공정률 98%를 넘긴 신한울 원전 1·2호기를 건설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제 곧 가동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게 될 원전 건설현장 입구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탈원전 정책 철회하여 나라경제 살려내자' '원전 없는 에너지안보 국가경제 무너진다' 등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1·2호기 준공 되면 그나마 있던 인력도 다 빠져나가 #식당 "아침부터 장사진 이뤘는데 지금은 점심 장사만" #재개 공론화 위해 33만명 서명부 전달, TV토론회도

완공을 앞둔 원전 건설현장 앞에 이런 현수막이 여럿 걸린 이유는 뭘까. 바로 신한울 1·2호기 옆에 지어질 예정이었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될 위기에 놓여서다. 경북엔 현재 전체 원전 24기 중 절반인 12기가 있다. 경주의 월성·신월성 6기, 울진의 한울 6기다. 여기에 울진에 2기, 영덕에 2기가 추가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본격적인 건설을 앞두고 있던 울진 신한울 3·4호기는 시공이 중단됐다.

경북 울진군 한울원자력본부 전경. 울진=김정석기자

경북 울진군 한울원자력본부 전경. 울진=김정석기자

신한울 3·4호기는 총사업비 8조2600억여원을 들여 1400MW급 한국 신형 원전(APR1400) 2기를 짓는 사업이다. 이미 7000억원가량 투자됐지만 2017년 정부 결정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원전 건설이 이끌던 울진의 경제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는 곳은 울진군 북면 일대에 자리한 숙소들이다. 인부들이 원전 건설 기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을 숙식을 해결하는 숙소가 북면에 20여 곳 정도 있다. 1·2호기 건설에 이어 3·4호기 건설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시기까지만 해도 20여 곳의 숙소는 남는 방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만 차 있고, 1·2호기 건설이 마무리되면 이마저도 텅 비게 된다.

방 28개짜리 숙소를 운영 중인 남기욱(82)씨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방이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도 채 차지 않은 상태다. 3·4호기 건설이 재개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울진에서 숙소를 운영하는 주인들은 모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판"이라며 "숙소가 문 닫는 것뿐 아니라 울진 전체 경제가 무너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 신한울원전 1·2호기 건설현장 인근에 위치한 숙소. 건설 인부들이 공사 기간 동안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다. 울진=김정석기자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 신한울원전 1·2호기 건설현장 인근에 위치한 숙소. 건설 인부들이 공사 기간 동안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다. 울진=김정석기자

신한울1·2호기 공사현장에서 4㎞가량 떨어진 한울원자력본부 앞도 식당과 편의시설 들이 밀집해 있지만 한산한 분위기였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한 업주는 "한창 공사가 이뤄질 땐 오전에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쳤는데 이제 점심 때만 잠깐 손님을 받고 이후로는 발길이 끊긴다"고 하소연했다. 이희국(69) 북면발전협의회장은 "건설 인부들이 급감하면서 한울원자력본부에 인근 식당을 이용해 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지만, 소용이 없다"며 "6월쯤 1·2호기가 준공되고 나면 진짜 큰일"이라고 전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한 지역경제 타격은 상당하다. 울진군이 한국원자력학회에 의뢰한 용역 연구 결과 신한울 3·4호기 건설로 울진지역에 연간 1조1198억원(발전사업 1조660억원, 지원사업 448억원 등 )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산출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탈원전반대 범국민서명운동본부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탈원전반대 범국민서명운동본부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울진군과 지역 시민단체 등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 발표 직후부터 꾸준히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반대를 외쳐 왔다. 지난 21일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본부'가 청와대에서 집회를 열고 33만여 명의 서명부와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이 서명부는 지난달 운동본부가 꾸려진 후 한 달여간 온라인 20만6624명, 오프라인 13만554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지난 22일 울진군청에서 열린 '진실·소통협의체' 제1차 회의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논의할 '정부정책 전문가 TV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울진=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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