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피한 중국계엄군|박병석<홍콩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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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생·시민들의 시위로「무정부상태」에 빠진「북경의 동란」수습을 위해 동원됐던 계엄군이 계엄령발동 5일 동안 계엄지역인 북경에 입성조차 못한 채 대부분 철수했다.
계엄군이 계엄지역(북경)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외곽지역에서 저지선을 뚫지 못하고 철수한 것은 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작전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질서유지」를 위해 투입된 계엄군들이 오히려 시민들의 저지에 부닥쳐 이들 시위대로부터 설득을 당하는가 하면 보급이 끊어진 일부 계엄군들은 시민들로부터 식량과 식수 등을 공급받기도 했으니 우리 시각으로 본다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비록 정부(국무원)가 계엄령을 발동했으나 학생들에 대한 진압여부를 놓고 군 내부에 심각한 토론이 있었고 계엄군들 중 상당수가 학생들의「애국운동」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계엄군 지휘부 대변인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계엄군은 학생·시민을 진압키 위한 것은 아니며 계엄군과 학생·시민들이 함께 어울러 군을 지지해 준데 감격한다』고 까지 말했다.
이들 일부 계엄군들은 자신들의 출동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그 중에는 북경으로 훈련을 나가거나 북경에서 촬영할 영화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며 출동 약1주일 전부터 신문과 방송으로부터 격리돼 북경의 최근 소식을 몰랐다고 한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예부터 「물과 물고기」 이론을 굳게 믿어왔으며 또 그렇게 선전해 왔다.
물고기(군)는 물(국민)을 떠나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엄군이 계엄령 이후 5일 동안이나 북경 외곽에 머물다 철수하게 된 것은 그 속사정이야 어떻든 우려되던 유혈충돌을 피했다는데서 국민과 군의 관계에 대해 음미해볼 점이 많다.
명령에 따라 임무를 단호히 수행해야할 군으로서는 체면과 명분이 없는 일인지는 모르지만「국민의 군대」라는 점은 지킨 셈이다.
특히 처음부터 『계엄군은 학생진압이 목적이 아니라 질서회복을 위한 것』이라는 확고한 군의 입장과 유혈충돌을 회피하고 대화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학생들의 현명함이 이 같은 결과를 맺는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80년5월 광주에서도 이런 상황이 빚어졌다면 지금 우리의 정치상황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상상해 봄직한 일이다.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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