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만한' 美의 눈엣가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자 세계적 문명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25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67세. 1994년부터 백혈병을 앓아온 사이드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뉴욕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사이드는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미국의 '오만한' 대외정책을 미국 내에서 강력하게 꼬집어온 비판적 지식인의 대표격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78년 출간된 '오리엔탈리즘'에서 사이드는 서구의 잣대로 그려낸 동양의 이미지는 알고 보면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오리엔탈리즘'은 세계 학계를 비롯한 문화계 전반의 화두로 자리잡으며, 다양성과 다원화와 공존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서양식 근대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하게 한 외부적 충격이기도 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조명받는 추세에 맞서 사이드는, 그것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서구 사회가 비서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무지의 충돌'이라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사이드는 35년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에 속하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이주한 뒤 카이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50년대 말 미국으로 유학해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았고, 63년부터 컬럼비아대에 재직하며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강의해 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적 공존을 기원했던 사이드는 지식인의 현실 참여에 대한 특이한 사례를 하나 남기기도 했다. 그는 2000년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에 항의하는 뜻으로 레바논 국경의 초소에 돌을 던져 당시 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돌출적 행동은 컬롬비아대의 지지발언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대학 측은 그를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그 돌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위법 행위가 아니며, 당연히 학문적 발언의 하나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오리엔탈리즘' 이외에 '팔레스타인 문제들' '문화와 제국주의' '지식인의 표상'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아웃 오브 플레이스'(자서전) 등이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그는 좋은 친구였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존경해 왔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