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54년 만에 초연된 칸타타 '보병과 더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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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진주 경남문예회관에서 이상근의 칸타타 ‘보병과 더불어’를 연주하는 부산대 효원 심포니와 진주·김해 시립합창단.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랑하는 형제여 전우여 부디 고이 명복(冥福)하라…"

20일 경남 진주 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56주년 기념 특별 음악회. 진주가 낳은 작곡가 고 이상근(1922~2000)씨의 음악으로 꾸며졌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작곡된 지 54년만에 악보가 발견돼 초연된 칸타타'보병과 더불어'(작사 유치진)였다.

대구시향.포항시향 상임 지휘자를 지낸 박성완 부산대 교수가 이끄는 부산대 효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진주.김해 시립합창단은 전쟁을 다룬 서사음악 속에 감춰진 내밀한 서정성을 잘 표출해냈다. 3악장'1950년도의 크리스마스에 부치다'에서는 비브라폰과 글로켄슈피겔 등 영롱한 음색의 타악기가 돋보였다. 성탄의 즐거움과 전쟁의 암울함이 교차하는 묘한 여운을 불러일으켰다.

초연 무대를 이끈 박성완 교수는"'보병과 더불어'는 한국전쟁 때 작곡된 유일한 '음악 다큐'이며 합창을 동반한 4악장짜리 소(小)교향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군인들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해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연습해왔다"며 "앞으로도 매년 6월 호국의 달에 연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연을 지켜본 김창재(58) 계명대 작곡과 교수는"50년대 초 한국의 현대음악 수준으로 미뤄볼 때 매우 진취적인 음악 어법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며 "군더더기 없이 호소력 짙은 악상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진주시청 문화과에서는 전쟁 통에 분실됐다가 올해초 발견된'보병과 더불어'악보를 구입해 초연을 추진해왔다. '보병과 더불어'는 24일 오후 7시30분 부산문화회관에서 다시 연주된다.

진주=글.사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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