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시위와 중국 체면|박병석<홍콩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체면·명예·얼굴 등의 뜻을 의미하는「미엔즈」(면자)라는 중국어는 중국인의 민족적 특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용어중의 하나다.
예부터「면자」를 무척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역사적 의의를 갖는 30년만의 중소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자신들의 앞마당 북경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외가 벌어짐으로써 정상회담의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태를 빚고있다.
세계의 이목이 북경의 중소정상회담에 쓸려있고 이를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 국에서 1천2백여명의 기자들이 북경현장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있는 것 등을 고려하면 예삿일이 아니다.
중국은 자신들의 허물을 손님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집안 싸움이 있어도 손님을 청한 기간에는 이를 멈추려고 노력하는 전통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적잖이「면자」를 잃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지도층들이 국가의 존엄과 이익을 고려해 냉정과 자제를 호소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형편이다.
「고르바초프」가 북경에 도착, 국가주석「양상쿤」(양상곤)과 회담을 한 15일 저녁 중국 측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중국외교부대변인의 뉴스 브리핑 때 각국 기자들은 이날 회담보다는 학생시위가 중소정상회담에 미치는 영향과 이미 뒤죽박죽 된 스케줄에 대한 풍자적 질문을 계속했고 대변인은 곤혹스러운 원칙론 적 답변으로 일관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보면 이런 사태가 중국의 체면을 깎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과에 따라서는 중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새롭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시위 때문에 빚어진 상황들은 외국귀빈에게는 결례가 됐지만 강제 진압대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중국당국의 일관된 노력, 평화적 시위방법 등은 불행한 충돌을 방지할 수 있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로 해결할 통로는 항상 열어놓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폭력은 결국 양측에 모두 이성적인 사고를 잃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자제를 보이는 태도는 아직 중국인의 면자를 크게 깎아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북경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