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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유적'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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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해 여름과 초겨울 두 차례 해남 지역의 고산 유적을 답사했다. 금쇄동(金鎖洞)을 포함한 일대가 많은 역사문화를 내포하고 있는 귀중한 유산이지만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 감탄했다. 이후 관심 있는 분들과 고산 유적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는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유적으로는 창덕궁, 석굴암, 불국사, 종묘, 고창.강화.화순의 고인돌 유적 등이 있다. 조경 유적으로는 창덕궁이 유일하다.

고산 유적은 대부분 남도의 해남과 완도에 위치하고 있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이다. 평생을 유배와 은둔, 출사와 귀양을 반복하면서 살다 갔다. 산중과 해중의 유거(幽居) 생활 속에서, 해남의 수정동 원림. 문소동 원림.금쇄동 원림과 완도의 보길도 원림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의 승경과 비경을 최대한 이용해 독특한 별서 원림을 조영했다. 이 시기에 국문학의 걸작으로 일컫는 주옥같은 시가를 창작했다.

고산의 본가가 있는 녹우단은 조선 중기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많은 귀중한 윤고산 수적 및 관계문서(보물 제482호)를 보관하고 있다.

고산은 53세에 수정동에 대(臺)를 쌓아 정자를 짓고 못을 만드는 등 원림을 조성했다. 상세한 기록을 전하는 옛 문헌은 없으나 현재 남아 있는 유적지를 보면 상당히 인공을 가한 규모 있는 조원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54세가 되던 인조 18년(1640) 경진년에는 금쇄동을 발견하고 새로운 원림을 조영했다. 금쇄동은 '금쇄동기'(보물 제482-2호)를 비롯한 많은 저술을 이룬 곳이다. '금쇄동기' 전체 구성에서 이곳의 22경관을 알 수 있고 금쇄동 안에는 현산고성이 있다. 금쇄동은 자물쇠로 잠긴 보배로운 궤짝을 뜻한다. 비경의 자연으로 해석된다.

보길도는 고산이 1637년 정월 인조가 청에 항복한 소식을 듣고 탐라로 가던 중 이곳의 빼어난 선경에 도취해 머무르게 된 곳이다. 보길도는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의 산실이다.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이 아직 남아 있다. 보길도에는 동양의 자연관과 성리학 사상이 흐르고 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한 윤선도의 뛰어난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산의 원림 유적은 한국 조경 사상 광대한 면적의 자연 승경과 비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다양한 시적인 상상력으로 조영해 낸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별서 원림이다. 앞으로 철저한 고증과 발굴.조사에 의해 정비되면 해남의 수정동 원림과 금쇄동 원림, 완도의 보길도 원림은 해남 연동의 본가가 위치한 녹우단과 함께 세계 유산으로 지정돼 인류가 공유할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