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말 테러' 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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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한나라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소신도 의지도 없다"며 "감사원장감이 아니다"고 혹평을 했다.

그런데 의원들의 이런 혹평에선 명확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소신'이니 '줏대'니 하는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대부분이었다.

의원들은 이날 후보자에게 태풍 '매미' 당시 대통령의 뮤지컬 관람과 관련, "청와대에 대한 직무감찰을 할 용의가 있느냐"고 집요하리 만큼 캐물었다.

尹후보자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른다"며 답을 피하면 "그렇게 소신없고 청와대 눈치나 봐서야 어떻게 감사원의 독립을 지키겠느냐"는 호통이 떨어졌다.

정확한 사항을 모르는 후보자로서는 섣불리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의원들은 기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듯 거세게 다그쳤다.

급기야 후보자가 의원들의 집중 추궁 끝에 "국회 요구가 있고 국민 대다수가 원한다면 하겠다"고 했음에도 "그렇게 희미해서야 어떻게 감사원장을 하겠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후보자가 상대적으로 나이와 경력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깔보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한 의원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대학교수나 하던 사람이 어떻게 권력기관을 상대로 직무감찰을 하는 막중한 권한을 가진 감사원을 이끌겠느냐"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다.

감사원 개혁방안, 감사 업무에 대한 식견과 개선 방안 등 후보자의 비전과 능력을 검증하는 질문은 찾기 어려웠다. 명확한 문제나 근거없이 단순히 기대한 답변이 안 나오고 나이와 경력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후보자를 비난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의 횡포가 아닌가 싶다.

강갑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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