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인공물과 인간 관계의 중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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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건축과 디자인 전통이 강한 나라다. 유럽 안에서는 물론, 미국과 아시아에까지 독특한 빛깔과 취향의 미감을 무기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을 퍼내고 바다를 간척하며 땅을 넓혀온 좁은 국토의 나라답게 디자인에 대한 본능적 집착과 개발된 감각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199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한 디자인 그룹인'드록(Droog) 디자인'은 물건과 상상력, 사회적 주제의식과 예술성을 아우른 작품으로 산업 제품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지함을 자랑한다.

'드록'은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체제로 운영하면서 작품 생산과 동시에 전시 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창작물을 바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강점이다. 우리 디자인계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단체라 할 수 있다.

26일부터 10월 1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노 디자인, 노 스타일:드록 디자인'은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힘있는 문화 운동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이들의 디자인 정신과 활동을 작품으로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95년작 '드라이 테크'로부터 2002년작 '호텔 드록'까지 가구.도자기.조명 등 1백여 점이 나온다.

'드록'이 강조하는 디자인 정신은 '근본으로 돌아가자'로 요약할 수 있다. 디자인의 과거 전통과 기본을 무시한 채 무한정 뻗어가는 현대 디자인의 폐단과 모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드록'은 영어의 '드라이(dry)'로 절제된 건조함과 본질에 대한 인식을 디자인 작업에서 강조한다. '드록' 회원들은 디자이너의 역할을 인공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세우고 그 사이의 중재로 본다.

마르셀 반더스가 만든 '매듭 의자'(사진)는 20세기 과학 기술과 오래된 미적 형식을 접목한 '드라이 테크'의 대표작이다. 하이 테크에서 탄생한 최첨단 소재와 로 테크인 섬유질이 만나 새로운 감각의 의자를 낳았다. 26일 오후 1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대회의실에서는 '드록' 초청 강연회가 열린다. 02-580-1536.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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