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획·탐사기사] 가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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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언제부터인가 대학가에서 '영어=토익(TOEIC)'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토익이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뛰고 있는 학생들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현재 성균관대.한양대 등 48개 대학이 일정한 토익 점수를 졸업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토익시험이 대학생들에겐 졸업을 위한 필수요건이기도 한 셈이다.

또 대부분의 기업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토익 몇 점 이상'이라는 식으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각종 국가기관.공기업.외국계 기업과 언론사 등도 직원을 뽑을 때 토익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토익을 준비하지 않고는 사회 진출이 어렵다.

◇'기술(skill)'만 가르치는 학원들="파트 2에선 질문에 나오는 단어와 비슷한 단어가 들어가 있는 보기는 답이 아닙니다.""(음질이 안 좋은 테이프를 틀어주며)최악의 상태에서도 듣고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이런 단어가 나오면 3번이 답입니다."

토익 학원을 다녀본 학생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소리들이다. 새벽에 줄을 서서 유명강사의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이런 기술부터 전수받게 된다. 학생들은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

빠른 시간에 많은 점수를 올려줄 수 있는 유명 강사를 선호하는 게 일반적 추세.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모두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기보다 토익시험을 잘 보기 위한 방법을 주고받는 것이다.

◇토익과 영어실력은 무관="토익시험 점수를 만점 가까이 받은 학생들이 생각보다 너무 형편없는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많이 당황했어요."(연세대 영문과 서홍원 교수)

지난 8월 말 서울 강남.종로 일대 어학원에 다니는 학생 3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토익 시험을 직접 준비하는 사람 중 50%가 "토익시험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학원 수업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44%가 "학원에서 토익시험에 필요한 기술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최근 고시에서까지 영어시험을 토익시험으로 대체하고 있다. 내년에 외무고등고시를 시작으로 국가고등고시 영어시험이 토익 등 민간 영어시험으로 대체된다.

◇중.고생 토익 열풍=지난해 토익시험을 본 중.고등학생은 무려 1백13만명. 토익 점수가 좋으면 각종 입학에서 특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익 점수를 이용해 외국어고에 가기 위해서는 대략 7백50점 이상, 대입을 위해서는 9백점 이상의 고득점이 요구된다. 그러나 토익이 과연 중.고생들이 접하기에 적합한 영어일까.

"저뿐 아니라 동료 교사들 모두 중.고생에게 토익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영어를 가르치기보단 시험 보는 기술을 가르쳐야 하니까요."(의정부 B중 영어교사 설모씨)

전문가들은 다양한 영어를 접하고 실력을 키워야 할 중.고생들이 토익 준비로 인해 정작 배워야 할 영어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우려한다.

분명 취업.졸업 등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제도를 따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제도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에 수반하는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토익이 그 단적인 예다.

성균관대 박장우.연세대 조유숙.서강대 윤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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