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인간미 보여준 '다큐 가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인터뷰'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화제의 인물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회견하는 모습, 혹은 거리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카메라 공세, 그것도 아니면 입사나 입국을 위해 치렀던 면접 장면의 긴장이 퍼뜩 떠오를 것이다.

사전 역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과 대면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인터뷰의 얼굴은 달라도 요체는 정보인 셈이다.

지금은 토크쇼라는 형식이 TV에서 완전히 자리잡았지만 누군가 토크와 쇼를 결합한 양식을 처음 선보였을 때 시청자는 한편으로 신선하고 다른 한편으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21일)과 월요일 사이의 경계, 즉 자정을 전후해 MBC를 통해 방송된 '인터뷰 다큐멘터리 가족'(제1부 어머니와 딸) 역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포맷이었다. 용감하게도 제작진은 애당초 내레이션과 자막이 없는 다큐를 만들어 보고자 마음먹었고 드디어 '해냈다'.

자막이 없고 소리(말과 음악)만 있다면 라디오와 무엇이 다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표정이 말하고 주름살이 말하고 눈빛이 말한다. 자막이 없으니 답답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스무 살의 여대생은 '자막이 사라지니 오히려 사람이 보였다'고 답했다.

맞다. 정보(자막)가 정서의 순항을 가로막고 해설(내레이션)이 해석의 여백을 침해할 수도 있음을 이 프로는 증언한다. 인터뷰의 연속이다 보니 이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증명사진 같은 쇼트가 많다. 카메라 앞에서 수많은 어머니와 딸들은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게시판에는 밤새 눈물을 흘렸다는 '고해성사'들로 무성하다. 울음은 그들을 깨끗하게 씻겨주었을 터다. 좋은 프로그램은 보는 이들을 속화시키지 않고 악화시키지도 않고 정화시켜 준다. 또한 건강한 프로는 눈앞에서 겉돌거나 귓가에서 맴돌지만 않는다. 마음의 커튼을 젖히고 늠름하게 걸어 들어온다.

보여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옷을 벗고, 들려줄 것이 모자란 사람들은 악을 쓰는 게 세태의 풍경인 데 반해 한밤중에 만난 '인터뷰 다큐멘터리'는 오랜만에 '마음의 누드'를 온전히 보여주었다.

꽤 긴 시간 인터뷰를 해도 화면에 나오는 내용은 고작 30초인 경우가 많을 터인데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마음의 겉옷을 벗기까지 제작진이 인내한 고뇌와 선택의 여정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 말의 구실과 명상의 가치를 동시에 일깨워 주고 싶었다면 아예 소제목들마저 없앴으면 어떨까. '이별'이니 '희생'이니 '독립'이니 하는 소제목들이 제작진의 의도를 연역적으로 드러내줘 오히려 안쓰러웠다.

배경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god의 '어머님께'가 화면을 감싸안을 때 그것은 일종의 '정서적 침입'으로 다가왔다. 이왕 시청자에게 생각(성찰)의 여백을 마련해 주기로 작정했으면 차라리 그 광장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한 자락 남는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