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표적 살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팔레스타인 최대 무장 조직인 하마스를 창설한 야신은 2004년 3월 22일 가자지구의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 이스라엘 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숨졌다. 경호원 두 명과 길가던 여성 등 아홉 명이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가 벌인 '표적 살해'다. 그는 "유대인은 테러리스트들을 없앨 권리가 있으며, 발톱보다 머리를 잘라야 적을 제거할 수 있다"며 이 작전을 강행했다.

하마스는 이튿날 란티시를 새 최고 지도자로 뽑고 보복을 다짐했다. 란티시는 "이스라엘이 지도에서 사라질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취임 한 달도 안 된 4월 17일 자동차를 타고 가다 이스라엘군의 로켓 공격으로 주변 사람 셋과 함께 불귀의 객이 됐다. 하마스는 다음날 새 최고 지도자를 선출했지만 이번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올 1월 총선 승리로 집권하고도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 '이라크 최대 테러리스트'라고 말한 알자르카위가 7일 미군의 폭격으로 숨졌다. 특정인의 목숨을 노렸으니 이 역시 표적 살해로 볼 수 있다. 우두머리를 잃은 이라크 알카에다 조직은 하마스처럼 새 지도자의 신원을 숨겼다. 알무하지르라는 인물을 옹립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집 떠난 외국인'을 뜻하는 낱말일 뿐 진짜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문제는 이스라엘.미국이 '테러 소탕'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자폭 테러로 민간인을 마구 공격하는 것은 큰 문제지만, 적 지도자 한 명을 표적 살해하기 위해 어린이.여성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간인 거주지에 미사일과 폭탄을 날리는 이스라엘이나 미국도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엔 가자지구의 해변에서 소풍을 즐기던 팔레스타인인 가족 여섯 명이 이스라엘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에 몰살하기도 했다. 그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아빠, 아빠"하며 울부짖는 소녀의 모습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알자르카위와 함께 저녁을 먹다가 폭사한 다섯 명 중에는 두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어린이가 있었다. 신념을 위해 싸우는 이에겐 죽음도 '순교'나 '고귀한 희생'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없이 죽어간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성전'은 무엇이고, '테러와의 전쟁'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채인택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