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cafe] 도깨비가 요정만 못할까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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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여행자 '한여름 밤의 꿈' 17~20일, 서울 LG아트센터, 2만~4만원, 02-3673-1390

극단 여행자는 이름처럼 해외를 전전했다.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도 공연했다. 2003년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 대상, 2004년 폴란드 말타, 콜롬비아 마니살레스, 에콰도르 키토 국제연극제 참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많이 돌아다녔고, 많이 이름을 날렸다. 외국에서의 호평이 역수입돼 국내에서 존재감을 갖게 된 경우다.

반면 이들이 만든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의 원작자는 셰익스피어다. 이 작품이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공연된다. 바비칸센터는 연출가 로버트 윌슨, 안무가 피나 바우쉬.머스 커닝햄 등 톱 클래스 작품으로만 채워지는 세계적 극장. 한국 연극 역사상 해외에서 거둔 가장 값진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해외 명작의 한국화를 통한 역수출이라 볼 수 있다.

17일부터 나흘간의 이번 공연은 해외 진출에 앞선 최종 점검 무대다. 축구로 치자면 월드컵 본선에 앞선 국내에서의 마지막 평가전이랄까. '한여름 밤의 꿈'은 바비칸뿐만 아니라 7월 영국 브리스틀과 독일 셰익스피어 연극제를 거쳐 8월 폴란드 페스티벌까지 건너간다. 과연 얼마나 훌륭하기에 이토록 해외 러브콜이 잇따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이 작품의 키 포인트는 역시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는가다. 연출가 양정웅씨는 요정을 도깨비로 바꾼다. 그것도 무섭고, 신비하고, 두려운 도깨비가 아닌 아주 친근하고, 인간적이고, 때론 허점투성이인 도깨비다. 술과 여자, 춤과 농악을 좋아하는 설정도 나오고, 남자의 버릇을 바로잡는 슬기롭고 현명한 여성상도 나온다.

행여 외국 유수의 극장에 오르니 심각한 게 아닌가 지레 겁먹지 말 것. 너무나도 유쾌하고 흥겨운, 그래서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우리네 도깨비가 셰익스피어의 혼령을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자부심도 조금 든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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