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병이 육박전 벌여 무장간첩 2명 생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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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83년 12월 4일 오전 대간첩대책본부(이기백 대장)는 전날 발생한 다대포 간첩사건의 전모를 전격 발표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발표내용을 근거로 톱뉴스로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발표된 사건 개요는 이렇다.

'12월 3일 오후 10시30분쯤 부산시 다대동 다대포 해안 육군 모부대 매복 초병실에서 근무 중이던 박○○ 하사와 김○○ 일병이 30여m 앞 해상에서 수상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朴하사와 金일병은 바로 사격자세에 들어갔으나 무장간첩 2명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 생포하기로 하고 백사장 한가운데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10여분이 지나 간첩들이 백사장 한가운데에 이르는 순간 朴하사와 金일병은 M-16 소총의 방아쇠를 당겨 위협사격을 했다.

이와 함께 인접초소에서 81㎜ 소총 박격포를 공중으로 발사, 주위를 대낮같이 밝혔다. 이때 무장간첩들은 백사장에 엎드린 채 수류탄 투척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다른 매복조인 박○○ 병장 등 3명이 달려나가 이들을 덮치며 치열한 육박전을 벌인 끝에 생포했다.

무장간첩들을 다대포 해안까지 싣고온 간첩선(35노트.5t급)은 동쪽 방향인 영도 쪽으로 즉각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군은 C-123기를 출격시켜 조명탄을 터뜨려 도주로를 대낮같이 밝힌 뒤 긴급 출동한 해군 PK함과 공군 전폭기로 간첩선을 맹타, 오후 11시쯤 영도 남쪽 생도(生島) 남방 9.6km 부근 해상에서 격침시켰다. 간첩선에 탄 승무원은 모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생포된 무장간첩들은 4일 오전 1시40분쯤 부산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 군작전 차량에 실려온 이들은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았다.

후송 도중 혀를 깨무는 등 자해행위를 했던 이들의 신분은 북한노동당 연락부 313원산연락소 54방향(기지) 소속의 전충남(27.조장), 이상규(23.조원)로 밝혀졌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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