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죽음의 그늘 그래서 삶은 더 반짝이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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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진=조용철 기자]

한 편의 시로 시작한다. "모자가 걸려 있다/중절모 바스크모 빵떡모 베레모//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할머니 증조할머니/외할머니 외할아버지/어머니 외삼촌/모자가 걸려 있다//…//나의 중학교 교모도 걸려 있다//죽은 사람의 모자를 거는 모자나무."

모자가 차례대로 걸려있다. 돌아간 집안 어른의 모자도 걸려있다. 모자를 보고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회상한다. 그러므로 모자를 바라보는 일은 일종의 초혼(招魂) 제의다. 귀신을 불러내는 한바탕 굿이다. 그런데 내 모자도 거기에 걸려있다. 그렇다면, 나는 산 사람이냐, 죽은 사람이냐.

박찬일(49.사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모자나무'(민음사)는 시종 심각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진지하게 묻고 또 묻는다. 아마도 그 고민의 극단이 표제작일 것이다. 존재에 대한 시적 성찰은 끝내, 살아있는 '나'가 죽은 '나'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까지 내닫는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묻기 위해 시인은 시적 자아를 살해한다. 섬뜩한 상상력이다.

시인은 곳곳에서 죽음을 예감한다. "서 있는 모든 것은 눕고 싶어한다. 맞는 말이다. 불안이다./서 있는 모든 것은 누울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중력이다.//불안에 시달리다가 중력으로 끝난다."('인생') 피할 수 없는 중력처럼 모든 삶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시인은 단언한다. 시집 말미 '아포리즘'엔 이런 문장도 있다. "세상 바깥 것을 궁금해하다가 세상 안의 것을 다 놓친 어리석은 자 여기 잠들다." 시인 자신의 묘비명으로 읽히는 구절이다. 살아서 궁금해 하던 '세상 바깥 것'은 결국 죽음일 터이고. 그렇다면, 묘비명은 이렇게 풀이해도 될 것이다. "죽음을 고민하다 삶을 망친 자, 여기 잠들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에 매몰된 건 아니다. 시 속에서 자신을 죽이고 묘비명까지 미리 써 놓았지만 시인은 결국 "왜 죽으려느냐, 갈 곳이 없다"고 일갈한다. 삶은 결국 고통이지만, 고통뿐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절대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지다. 도저한 생의 의지다.

오랜만에 만난 남성적인 시다. 화려한 수사나 요사스런 표현 따위는 없다. 말하려는 바만 발라내 바로 말할 뿐이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결국엔 죽음의 그늘에서 걸어나와 삶을 발언하는 시인의 마음가짐이다. 간신히 발언하고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시대와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고집하는 건 쉽지 않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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