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마케팅 에피소드-맛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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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케팅 에피소드-맛 마케팅’- 하종오(1954∼ )

그녀가 받은 지시는

회사가 만든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맛과

오래전 가마솥으로 지은 밥맛이 같다는 것을

고객들이 알게 하는 일이었다

군불 지펴본 적 없고

가마솥으로 지은 쌀밥 먹어보지 못한 그녀는

고객도 군불 지켜본 적 없고

가마솥으로 지은 쌀밥 먹어보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전기밥솥 밥맛과 가마솥 밥맛을 구분해낼

고객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일방적인 주장만 하면 되었지만

또한 고객들은 일방적인 주장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군불 지필 아궁이도 없고

가마솥 걸 부뚜막도 없었으므로

전기밥솥 사서 맛나게 밥해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지시받은 대로

가마솥 옮겨놓은 전기밥솥이라고 널리 알렸다



소비자 심리와 인간 심리는 어떻게 다른가. 경제·경영학(과학)이 보는 인간과 예술(인문학)이 보는 인간은 얼마나 다른가. 이같은 질문이 무의미하다면 자본주의는 원숙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소비자로 사는가, 아니면 인간으로 사는가. 나는 소비하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 소비하는가.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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