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영국태생 명망가이며 재산가인「세실·로즈」는 영국인이 세계에서 제일 가는 종족이라고 호언한 일이 있었다.
칭찬인지, 흉인지 모를 말 가운데는 미국 철학자「G·산타야나」가 한 말이 있다. 『영국은 개인주의와 괴팍한 사람들, 이단자들, 별종의 사람들, 취미가, 유머리스트의 낙원이다』
옥스퍼드대학 교수까지 지낸 스페인의 외교가「마다리야가」는 일찍이 영국사람과 프랑스사람, 그리고 스페인 사람을 비교한 일이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생각하고 나서 뛰고, 스페인 사람들은 먼저 뛰고 나서 생각한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모여 농담을 주고받을 때의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농담을 하면 전부 듣기도 전에 웃기부터 한다. 독일 사람들은 농담을 듣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에야 웃는다. 일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 끼면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껄껄 웃는다. 자, 영국 사람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들은 끝까지 듣고 나서 웃을 만하면 웃는다.
이런 일화들만 봐도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신중하고 점잖은가를 알 수 있다. 신사 하면 영국을 생각할 정도다. 견업 혁명 이후 영국 사람들이 필독서로 삼아온「스마일스」『자조논』이라는 책을 봐도 그들은 남을 돕고 도덕적으로 품위를 지키며 근면, 자조하는 생활을 둘도 없는 미덕으로 알고 있다.
바로 그 영국에서 심심하면 축구 경기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는 사고가 벌어진다. 엊그제도 셰필드의 축구 경기장에서 철조망이 무너져 90여명의 사람들이 짓눌려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85년에도 그 비슷한 일이 브라드포드에서 있었다.
이번 셰필드의 경우는 입장권이 없거나 위조 입장권을 가진 군중들이 밀리고, 밀려 빚어진 일이었다. 그 이유마저 창피하게 되었다.
영국은 평소 질서나 사회 공덕심같은 것이 너무 규격에 짜여지듯 빡빡해 그 사회 일각의 사람들은 그런 틀로부터 벗어나 활개를 펴고 싶어하는 사회심리가 있는 것 같다. 축구장이 바로 그런 장소다.
셰필드 사건은 그런 점에서 영국다운 사고 같다는 생각도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