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선원으로 발돋음"|6년 역사 끝낸 송광사|교리 살리되 건축엔 독창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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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남 승주 조계산 송광사의 중창불사가 6년만에 마무리되어 장엄한 가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년 고찰이고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6·25때 중심부의 크고 작은 건물등이 많이 소실되어 주변 암자의 목재를 옮겨와 대웅전을 만드는 등 원래 가람의 진면목이 많이 훼손돼 있었다.
송광사 중창은 전방장 구산 스님의 발원으로 시작되어 현주지 현호 스님과 송광사신도 모임인 불일회 회원 등 사부대중의 신심이 뭉쳐져 이루어졌다.
송광사는 오는 30일 중창불사 회향행사를 가져 석가여래 진신사리탑 봉안 법요식등을 갖고 국제고승 법회도 열 계획이다.
송광사는 이번 중창불사를 1198년 불일진 조국사가 선풍을 다시 일으켜 불교를 혁신한 정혜결사 운동의 정신을 이어 국제선원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송광사의 이번 중창기간에는 모두 26번의 「상량이오!」 하는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1백8평의 탑파형 대웅보전이 새로이 지어졌고 지장전·효봉영각·성보전·목우헌등의 건물이 들어섰다.
승보사찰을 상징하는 승보전도 자리를 옮겨 새로 지었다. 새로 세워진 대웅보전은 불교건축과 예술계의 권위자들이 모여 전통불교 건물양식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켜 만든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사찰측은 자부하고 있다. 목조탑파 대웅전으로는 처음인 이 건물은 『불교의 교리를 건축속에 함축시키면서 옛 문화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이 시대의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답아 창조적으로 설계되었다』 그 현호 스님은 말하고 있다.
대응보전의 건축양식은 다보탑의 기본구조가 응용되었고 보궁으로 지어졌다.
안에는 높이 열두자의 금동삼존불이 모셔졌고 문수·보현·관음·지장 등 사대보살이 좌우에 시립하게 하였다.
불단에는 부처님의 설산수도상 등 팔상을 차례로 새기는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
대웅 보전의 단칭은 격조높은 금단청이며 단청의 일인자로 알려진 한석성옹이 했다. 문화재 전문위원 임영주씨가 무늬구성과 배색을 했다.
벽채에는 조정우 화백이 열반도를 비롯한 대벽화를 그렸고 벽 앞면의 탱화는 우정스님이 그렸다. 감수자는 동국대 홍윤직 교수.
대웅 보전의 본존불 아래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탕을 봉안했다.
새로 건축된 지장전은 각종 불교 재의를 진행하는 곳. 맞배 지붕으로 하여 대웅보전·승보전등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조계 종단의 선풍을 널리 떨친 효봉 스님을 위한 효봉 영각은 사자 사리탕뒤에 새로 세웠다. 구산 스님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던 만큼 사찰과 신도들의 정성이 이 건물에 배었다.
승보전은 전에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것을 옮겨 놓았다. 증보전 안에는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의 영산회상에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1천2백50대 비구가 모인 것을 뜻하는 대비구중 l천2백50 성상이 조상되어 들어앉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송광사는 6·25 이전에는 경내의 건물 처마 밑으로만 다녀도 비를 피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여러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었으나 이번 중창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현대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전체구도를 시원시원하게 하여 대웅 보전앞을 넓히는 등 많은 공간을 확보했다.
송광사 중창은 현재 박물관으로 만들고 있는 성보전과 연수시설이 세워지면 완료된다.
송광사의 이번 중참불사는 1197년 보조국사가 첫 중창, 정유재난 (1842년) 대화 재후의 중창등에 이은 개산이래 제8차 중창불사다.
송광사 4부 대중들은 이제 가람의 외관을 갖춘 만큼 선원에서 새로운 선풍이 일어나고 국제적인 선원으로 커나가 한국불교의 정수가 세계에 퍼져 나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글 임재걸 기자
사진 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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