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기든 지든 모두 같은 축구나라 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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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인 뒤셀도르프에서 일본과 호주의 경기가 열리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고속열차(ICE)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야 했다. 거기서 유로시티(EC)를 타고 다름슈타트~만하임을 거쳐 카이저슬라우테른에 닿는다.

12일의 EC는 파란 저지(jersey)를 입은 일본인들과 노란색과 초록색 저지를 입은 호주인들, 그리고 그 밖의 나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승객들은 객차를 연결하는 통로나 객실의 좌석과 좌석 사이, 승강구까지 메웠다. 프랑스에서 국경을 넘어온 열차는 냉방이 되지 않아 찜통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고통을 호소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래하고 대화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산지에 있는 쾌적하고 예쁜 도시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경기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서포터들이 몰려들었다. 온갖 치장을 하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광경이 사육제나 가장행렬을 보는 듯했다. 응원전은 치열했고, 승부는 호주의 역사적인 월드컵 1승으로 마감됐다. 호주 서포터들은 캥거루처럼 뛰며 좋아했고, 일본 서포터들은 낙담했다.

그러나 다시 EC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길에, 두 나라 서포터들은 월드컵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됐다. '월드컵 재팬' '월드컵 오스트레일리아'.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일본인이든 호주인이든 한국인이든 한결같이 축구 제국의 신민이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말을 섞어가며 대화했고, 서로의 말을 배우려고 애썼다.

존 레넌이 '이매진(Imagine)'에서 노래했다. "천국이나 국가나 소유라는 것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면 온 세상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축구의 나라 잉글랜드 사나이가 지은 가사로는 의외다.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세상은 축구로 하나가 된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우리 취재팀은 함께 EC를 타고 온 일본인 서포터들과 포옹을 한 뒤 헤어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보자"며.

프랑크푸르트=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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