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설은 터무니없는 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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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에 머물고있는 문익환 목사는『방북진의와 성과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며 하루 전에 회견을 요청, 7일 낮 동경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주일 특파원 등과 약2시간에 걸쳐 자리가 마련됐다.
문 목사는 김일성에 대한 인상을 말하면서『아직도 건강하고 얘기해보면 기억력도 좋아 옛날 일도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그는 민족주의자의 색채가 강하며 그 자신 동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민주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평양에서『오래 전부터 존경해온 김일성 주석…』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데 대해『오래 전부터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김일성 주석…』이 잘못 전해져 오해를 빚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김일성을 만난 자리에서『통일문제에 관한 한 남북 양쪽이 다 자신이 없는 것 같다』고 좀더 대범할 수 없는지에 대해 물었더니 김일성은 별로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또 주체사상을 지적, 모든 글과 말이 모두 민중의 것인데 주체사상도 그런 것 아니냐고 묻자 김일성은『주체 사상도 인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동의했다면서『김일성을 이 정도로 끌어내린 것만 해도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아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문 목사는 옆에 앉은 정경모씨가 대담하게도 북한 사람들에게「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니,「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김정일이니 하는 말에서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나 자신은 통일 대업을 이루려는 마당에 정면 도전한다는 인상을 주는 말은 가급적 피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김일성이 자신이 살아있을 때 통일을 꼭 이루어 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하면서 김일성과 2시간 동안에 통일 방안에 합의를 본 것은 자신도 놀란 사실로 의외였다고 말하고『김주석 자신이 순간적으로 판단, 그날 저녁 당장 발표하라고 배석한 서기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대체적으로 북한 사람들이 검소하게 사는 것 같았다며 자신이 방문한 김책 공대교수로 있는 친척 집 서재가 자신의 것보다 약간 컸을 정도였고 벽장같은 가재 도구는 칠 한번 했을 뿐 조촐했다고 예를 들었다.
문 목사는 모란봉 초대소 안의 옥류관에서 먹은 냉면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으며, 또 길주 등에서 먼길을 온 친척들이 찰떡·녹두지짐을 싸 갖고 와 같이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북한의 호전성이 상당부분 없어진 것 같다고 인상을 말하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무기를 장난감으로 갖고 놀고 있는 예는 없었으며 과외교육도 과학기술·예술교육·체육교육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남포에서 8km떨어진 서해 갑문을 찾은 다음 평남 순천의 대규모 공업단지도 둘러보았는데 주로 경공업 생산재 공장으로 차있어 북한 경제가 중공업 위주에서 경공업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밝혔다.
묘향산 보현사를 찾았을 때 헬리콥터를 이용했다는 문 목사는『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것으로 보였으나 아직은 스스로 굴러갈 힘은 없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문 목사는 구체적으로 교인 중에는 노동당원이 한 명도 없으며 교인은 노동당원이 될 수 없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중국이 79년의 정책변화로 종교 자유가 허용됐지만 이제서야 스스로 굴러갈 힘이 붙고 있다고 지적, 『당장은 체제에 순응하는 어용 종교일지 모르나 언젠가는 자생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목사는 또『통일이라면 어떤 통일이든 다 좋다』고 평양에서 발언한 내용은 사실 오랜 지지인 장준하씨의 생각으로 공산 통일도 좋다는 것은 아니며 통일과 민주를 반반씩 생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혼란이 없으면 창조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문 목사는 오해가 생김으로써 「문익환의 통일론」을 온 국민이 알게 된 것도 성과라면 성과라고 만족한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내가 망명할거란 보도가 있었다는데 사실이냐』고 되묻고 그건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오히려 그런 보도가 나온데 자신이 놀랐다며 이를 일축했다.
문 목사는처음에 강남 호관씨(서울대 음대 강사)를 동행하려고 했으나 여권 수속이 늦어져 유원호씨를 대동했을 뿐이라며 유씨를 통일당 김녹영씨의 소개로 알게된 정경모씨가 중요한 연락이 있을 때마다 도와준 인연으로 같이 가게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문 목사는 9일 오후로 예정된 범 민족대회 추진본부(한통련 계열)의 환영대회는 알지도 못하고 연락도 없었다며 일본신문·방송과의 인터뷰나 교회 설교가 있을 뿐 다른 계획은 없다고 귀국할 때까지 정치활동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목사는 동경에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 표는 자신이 샀으나 북경에서부터는 북한측에서 국빈 대접을 하는 바람에 준비했던 돈(1백만엔)이 많이 남았다』고 말하고 일본에 있는 친구들의 도움도 많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김일성에게 갖고 간 선물은 자신의 저서인『죽음을 산 자』와 박용수씨의『우리말 갈래사전』등 2권이며, 김일성으로부터는 어머니와 아내 앞으로 옷감과 3폭 자개 병풍을 선물로 받았다고 밝혔다. 문 목사는『김구 선생은 실패로 끝났지만 자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공해야 할 것』이라며『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결의를 보이며 회견을 끝냈다.【동경=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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