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라기에 맡겼는데 … 사설펀드 '꽝' 많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주부 김모(50.여)씨는 한 '사설(私設) 투자 전문가'에게 투자를 맡겼다 큰 돈을 날린 뒤 가슴만 치고 있다. 올해 초 한 케이블TV 증권 방송을 통해 알게된 전문 투자자 L씨에게 2억여원을 건네주고 투자를 일임했다가 3개월 만에 투자 원금이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

김씨는 "L씨가 유명 증권 채널의 프로그램 사회를 맡을 정도라 믿고 자금을 맡겼다"며 "이씨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결국 손절매 시기를 놓쳤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주가가 급락하면서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사설 투자전문가'에 투자를 맡겼다 손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 분쟁조정실에는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간판만 투자 전문가=개인 투자자 박모(59)씨도 자칭 '전문 투자자'에게 주식 투자를 맡겼다가 수천만원대의 손실을 봤다. 속칭 '고수'란 이가 자신도 모르게 대량 외상(미수)거래는 물론 선물거래까지 하다가 원금을 거의 다 까먹은 것.

박씨는 "증권사 지점 내에 버젓이 '개인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있어 증권사 직원인 줄 알고 돈을 맡겼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증권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 분쟁조정실 등에 따르면 사설 투자 운영자들은 유명 증권 방송 홈페이지나 증권 정보사이트의 전문가 코너등을 창구 삼아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들은 처음엔 '고급 종목 정보 제공'등을 내걸고 유료 회원을 유치한다. 이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매도.매수 시점 등을 전해주며 투자자들을 '관리'한다. 대상은 주로 증권투자를 잘 모르는 주부나 고령자들. 친분이 쌓였다싶으면 투자자들과 일임 매매 계약을 맺은 뒤 투자 수익의 일부를 '성과금'조로 받는 식이다.

일부 증권사는 영업점 내에 'XXX아카데미' 등의 간판을 내건 사설 투자 전문가들의 사무실까지 마련해주고 이들의 임의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정체불명의 투자 연구소에서 '투자설명회'를 열고 투자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분쟁조정실의 설명이다.

◆온라인 투자도 지뢰밭=유명 증권정보 사이트 등에서 활동하는 일부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이 무책임한 종목 분석과 추천 남발 등으로 투자자들을 울리는 사례도 여전하다. 이들은 '추천 종목 상한가 속출', '초대박 종목 공개' 등 달콤한 문구로 회원을 모으고 있으나 과신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사이버 애널리스트 B씨는 최근 중소기업 A사를 '대박' 종목으로 추천했다가 한달도 안돼 '손절매하라'고 말을 바꿨다. 그가 추천한 다른 종목도 줄줄히 급락하자 B씨는 슬그머니 잠적했다. 한달에 수십만원을 내고 회원이 된 투자자들은 이미 거액의 손실을 본 뒤였다.

같은 종목에 대한 유료 보고서를 장중 주가에 따라 수시로 바꾸거나 하루에도 수십개 기업을 추천 종목으로 제시해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이버 애널들도 적지 않다.

증권정보사이트 P사 관계자는 "연 수백%의 수익률을 안겨주는 사이버 애널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더 많기 때문에 투자전에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 받기 힘들다=사설 투자 전문가들에게 일임 매매를 맡겼다가 손해를 봤더라도 보상을 받을 길은 전무하다. 현재로선 금융기관이 아닌 사설 펀드 투자에 따른 책임 소재 공방은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민사 소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증권선물거래소 분쟁조정실 박승배 과장은 "증권사 직원에게 일임매매를 맡겼을 경우 증권사의 과실이 인정된다면 분쟁조정 신청을 통해 일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사설 펀드는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이기 때문에 아예 분쟁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