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목사 뒤처리"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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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익환씨의 북한 밀항은 그의 입북방식과 언행 못지 않게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대응방식으로 인해 많은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우선 문씨의 입북을 당국이 사전에 알았느냐 몰랐느냐가 아리송하고, 후속 조치를 수립함에 있어 정부가 중지를 모으기보다 강온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세직 안기 부장은 국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정부가 문씨의 방북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 여부에 대해「정보기관의 신용과 국익을 위해」답변을 않겠다고 유보했지만 정부 각 기관의 얘기를 종합하면 안기부를 포함, 어떤 정보기관도 확실한 사전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씨가 평양에 갔다는 제1보를 북한 방송으로부터 듣고 정부내 대책을 주선한 것도 안기부가 아닌 문공부였던 것으로 알러졌으며, 25일 밤 부랴부랴 통일원 대변인 발표로 입북 사실을 국내 언론에 보도토록 한 조치도 청와대 당국자가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번 문씨 사건은 6공 정부의 공안조직간 상호협력 체제와 업무분담에 심각한 허점을 노출했고 차제에 새로운 각오와 정비가 없으면 제2, 제3의 실수가 있을 것이란 우려를 씻을 수 없게 됐다.
그후 문씨를 어떻게 처리하며 금후 북방정책과 남북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부내의 논의 과정을 보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대응방식에 다시 한번 회의를 갖게 하는 측면들이 보인다.
현재 정부·여당내에는 문씨 사건 이후의 남북교류 문제를 놓고 추진파와 전면 보류 또는 연기를 주장하는 강경파간에 의견 대립이 적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구 통일원장관·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 등 기존의 대북 화해정책을 밀고 나갔던 추진파는 문씨의 북한 행을 단순한 범법행위로 간주해 다스려야 하며 이 사건이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에 기초한 대북 화해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들을 제외한 정부관계 장관과 민정당 간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원칙과 절차에 속도위반의 감이 없지 않았던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처음 관계 장관회의에서 문씨 사건의 진상규명과 북한의 과오 시인을 받아내지 않는 한 기왕에 추진해온 당국간 대화와 각종 민간교류를 전면 보류한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내렸었다. 이날 회의에서 박철언 보좌관은 참석치 않았고 이홍구 장관은 숫자에 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불과 며칠후인 4일 열린 같은 회의는 북한과의 개별 민간교류는 불허하고 공식 남북대화는 계속한다는 방침으로 선회했고 이것마저도「최종」이 아님을 강조, 며칠 후 다시 논의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 교류 추진파는 문씨가 평양에서 어떤 논의를 했는지, 김일성과 만나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정확한 정보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공작이라고 몰아붙인 것은 통일논의를 개방하고 통일정책을 전향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책방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북 정책의 재검토라는 반론을 누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정부 스스로 그같은 주장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관철하는데 있어 너무 많은 허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민정당은 문씨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대북 화해 정책에 대한 폭넓은 불만과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북방·남북 정책의 전면재검토를 요구했다.
이처럼 여권 내부에서 손발이 안 맞고 불협화음이 일자 정부는 계속 논의와 결론을 미루는 인상을 주고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국민들이 문씨 사건으로 혼란에 빠졌다는 의견을 수긍하지만 그보다는 그같은 분위기에 짓눌려 해결의 물줄기를 잡아가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이 더 큰 문제』 라며 정부의 여론 조정 능력에 잘못이 있음을 시인했다.
결국 이같은 사실은 통일정책을 수행하는 정부측의 철학과 의지가 박약하든지, 아니면 판단과 추진능력이 부족하거나 두 가지 요인이 다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문씨가 판문점으로 올 것인가, 동경 등 제3국으로 올 것인가의 판단에 있어서는 공안 당국은 당초 판문점 쪽에 비중을 두었고 통일원 쪽은 제3국 쪽을 점쳤으며 이같은 양론의 대립으로 대책을 놓고 한동안 우왕좌왕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정부측의 혼선에는 정치권의 분명치 못한 태도도 한 역할을 했다. 여소 야대의 정국아래서 국민 여론에 큰 힘을 발휘하는 3야당, 그 중에도 평민당의 태도가 상당히 모호해 중평 연기 등에 평민당의 신세를 졌던 여권 핵심부가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다는 얘기도 정부내엔 퍼져있다.
정부가 그동안 준비해 온 우리의 종합 통일 방안을 마련하는 문제에 관해서도 정부는 아직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체제 연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부의 진보적 통일 방안을 지금 내놓으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는 입장이다. 지금 발표하려면「문익환 쇼크」를 감안, 방향을 자연히 보수화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7·7선언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민정당은 공연히「환상적 대북관」을 담아 통일정책을 불필요하게 혼란시키지 말고 보수적인 통일방안을 지금 내놓아 국민들의 우익·보수화 경향을 세력화 하자는 입장이다.
이홍구 통일원 장관은『국민의 합의를 기초로 한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문씨 사건으로 좌우대립 양상마저 보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느 세월에「국민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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